▲ 김 재 성 교수
성령의 적용사역을 넘어서서, 각 개인이 받아야할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구원받은 자에게는 오순절 날에 일어난 방언이나 신비로운 체험이나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권능이 주어진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은 은사주의자들의 과장이다. 부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진 영적인 욕망과 탐욕을 채워주시는 것이 구원의 내용이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 일부에서 요한 삼서 2절을 소위 ‘삼박자 구원’이라고 하면서 구원받은 내용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성경적인 구원론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혼이 악에서 벗어나서 회개하고 자유케 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봉사하며 살도록 하신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도록 건강을 주시는 것이지, 세상에서 잘먹고 제멋대로 잘 살라고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믿음의 열매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일에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냥 세상 따라서 원하고 바라는 바대로 배불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혜택들을 주시는 것 뿐이다.

둘째, 구원은 과거에 계획된 것이요 성취되었으나, 현재 믿는 성도의 삶 속에서 진행형이며, 장래 소망과 미래에 완성된다. 구원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 직접적으로 이해되고 체험되고 인식된다. 나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의 은혜를 새롭게 받아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장차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이지만, 구원의 은혜들이 지금 현재 순간마다 성도들에게 충분히 소화되고 알려진다.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각종 혜택들과 은택들을 맛보아 알게 된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서 말씀을 전파하자, 그가 깨닫고 즉각적으로 회개하면서 주저함 없이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훗날 삭개오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서 즉각적으로 현재적으로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순간마다 죄의 유혹이 천사의 얼굴을 가장하여 미혹하기 때문이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면서도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전에 충만했다고 하더라도, 항상 은혜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날마다 드려야할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인본주의적으로 가장 많이 왜곡되는 구절이 다음 구절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하지만, 이 구절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내가 남다른 자유의지를 가지고 날마나 노력해서 구원을 완성시키고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며 겸손하게 살게 하시며, 오만하지 않도록 마음을 제어하신다. 다 되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향해서 순종하고 복종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주신다. 교만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약점이 많은 성도들을 붙잡아 주신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날마다 순간마다 자신의 옛 사람을 죽이고, 본성적인 부패와 죄를 대적하여 싸우는 성화의 삶을 살게 된다. 믿음과 성화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에게는 거룩한 영적 생명력이 작동하여서 선하신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서 회복의 과정을 겪는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특히 왜곡된 성경관을 갖고 있는 현대 신학자들의 회의론을 경계해야 한다. 18세기 유럽에 계몽주의 철학이 퍼지면서 인간의 자율성을 강하게 신뢰하면서, 기독론의 오류와 곡해가 심각하게 초래되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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