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핀 꽃밭 그
언저리에서 생명의 울음소리 듣고 싶다

내가 바람이라면
힘겹게 익어가는 열매의 무게를 받쳐주고 싶다

때론
미친 바람으로 달려가
파도 깊은 곳에서 나의 욕정 풀어놓고

온기 식어갈 때
겨울 기도 드리는 여인의 어깨 위를 윙윙 울어주고 싶다

▲ 정 재 영 장로
제목의 바람을 가정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때, 한계나 속박에서의 탈출을 암시하고 있다. 즉 바람이 되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뜻으로, 현실은 마음과 반대의 상황에 있을지라도 시인의 심리 안에는 강열한 소원으로 품고 있다.

첫 연의 ‘지천’이라는 말은 보편적 삶의 현장을 말한다. 바람이 가고 싶어 하는 동경의 장소는 우선 인간의 삶이다. 일반인의 현장으로, 화원이 아닌 지천의 꽃밭으로 은유함이다. 이곳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모습을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공간으로 보고 있다. 모든 생명은 꽃같이 아름답다는 것을 함축하기도 한다.

두 번째 연에서 앞 연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내진다. 꽃밭으로 가는 목적은 단순히 꽃만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열매를 보기 위함이다. 생명은 열매를 통해 이어져 나간다. 열매는 다시 꽃으로 피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열매의 무게다. 이것은 단순한 질량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가치 즉 생명의 가치를 말함이다. 화자는 익어가는 생명의 가치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세 번째 연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욕정)을 해소하는 열정을 ‘미친 바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근본적인 욕망은 ‘파도 깊은 곳’이라는 비유로 말하는 것에서 무의식의 세계까지 암시한다. 동원된 욕정은 인간의 본능적인 갈등을 말한다. 그 갈등을 파도의 강열함으로 비유한 동질의 모습은 심연에 있는 무의식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소가 아닌 해결의 방법이다. 심리적인 치료가 아닌 행동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의식이다.

마지막 연에서 ‘온기 식어갈 때’ 란 삶의 열정이 식어가는 시기로, 앞 연의 열정이 식어간 시기다. ‘겨울 기도’가 곧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인생의 겨울이다. 기도란 파도와 반대로 고요하지만 깊음은 더욱 깊고 ‘울어주고 싶’을 정도로 간절하다.

바람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승화하려는 심리를 잘 보여준다. 시가 비유를 통해 정서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언어예술이라는 정의에 합일된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