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열고 온 그대 얼굴에
아롱진 이슬방울은
영원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미소

기지개를 켠 두 팔 사이로
언뜻 새어나온 햇살은
꽃잎 간질이는 영롱한 물결

폭염에 겨워
고래 숙인 잎새
잠간 머물고 간 바람이
살짝 흔들어 주는 부채춤

하늘로 비상하는
그대 노란색 꿈은
별과 나비 나래로 펼친다

 

▲ 정 재 영 장로
시는 말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물론 언어의 청각이나 촉각 등 모든 감각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관념이거나 정서거나, 사물이거나 시각적 기능인 감각화해서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작업과 같다는 말이다.

그럼 그림의 기초는 무엇인가. 드로잉(drawing)이고 스케치(sketch)를 하는 기초 위에 자기의 세계를 그린다. 영어인 드로잉을 데생(프랑스어 dessin) 이라고도 한데, 소묘(素描)로 번역한다.

미술이론을 빌려온다면, “데생은 사물을 명암법에 의거하여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사실적으로 다루거나, 또는 작가가 대상물을 보고 나름대로 느끼는 감성대로의 표현을 포괄하는 것이다. 데생의 영역은 이렇듯 대상을 보고 관찰한 느낌을 평면으로 옮기는 모든 기법을 포괄하는 방법이다.” 얼마나 시론과 닮았는가.
예시에서 들꽃 묘사를 꽃잎의 이슬방울을 어머니 미소로, 햇살을 영롱한 물결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부채춤으로, 꽃잎의 노란색을 벌과 나비의 나래로, 그림을 그리듯 만들어 놓았다. 들꽃이 어머니가 되고, 물결이 되고, 부채춤이 되고, 나래가 되는 것은 시인의 눈(심미안)에 그리 보인다는 것이다. 원래 사진을 찍으면 그냥 식물성 꽃이지만 예술가의 눈에 포착되면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물론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기능이 아닌 심리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이것을 비유라 한다. 비유는 곧 다른 모습으로 그리는 것으로, 변용(變容)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직역한다면 얼굴을 바꾼다는 말이다.

화가가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사물이나 현상을 질감을 가지게 만들 듯이 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질감의 드러냄을 육화(肉化)나 형상화(이미지화)다. 모두 동일한 의미다.

이처럼 모든 예술은 주의 깊은 관찰과 깊은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다양한 체험을 요구한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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