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욕망과 탐욕 결국 범죄로 이어져, 사이비의 ‘광란의 질주’ 심각
하나님과 인간 관계회복 통해 하나님의 주권 드러내는 새로운 질서 창출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유지하는 교인들의 신앙공동체임을 자각해야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교회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생명력도 없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도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지체도 아니다. 생명력도 없다.

그렇다면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가 역동적이며, 생명력이 있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교회를 살아 움직여야 하는 생명력 있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활동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회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 비춰지고 있다. 그것은 목사와 교인, 교인과 교인간의 관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갖는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공동체성을 상실한 나머지, 분열과 갈등, 범죄 집단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국교회는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우는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난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외면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거룩성’도 상실했다.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간에 생겼던 균열이 봉합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이를 망각하고,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로 계산하며, 교회의 강단에서 돈!돈!돈!을 외치며, 공동체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부자들의 공동체가 되었으며, 교회의 직분은 헌금의 액수로 결정되는 세태가 되었다. 특히 한국교회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난당하는 자, 우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이들이 마지막 남은 것까지 빼앗아 바벨탑을 쌓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명력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부자가 되었으며, 부자들만 다닐 수 있는 교회로 변질됐다. 교회가 부자들의 교회로 변질되면서, 교회당은 이들의 정서에 맞게 건축되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채, 일본의 한국식민지 침탈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를 옹호하는 성명서를 일간신문에 게재하는 등 쓰레기 같은 목사에게 무슨 희망을 걸겠느냐는 것이, 가난하고 소외된 국민들의 목소리이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에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 국민들은 교회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등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가 깨지기 시작했다. 교회내의 갈등과 분열은 증폭되고, 교인들이 드린 하나님의 헌금은 목사들의 품위유지를 위한 비자금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 목사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장로가, 비자금의 일부를 사용하고, 이를 채워 넣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사건은 오늘 한국교회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교회는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한국교회는 분명 범죄집단이다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거룩성’을 유지하는 교인들의 신앙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사건에 대한 믿음과 믿는 자들의 공동체이며, 메수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증언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가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의해 균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성’에 균열이 생기면서, 미움과 반목, 그리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범죄행위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개신교의 메카라고 말하는 종로 5가는 이미 범죄 집단의 굴레에 속한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종로 5가가 과거 가난하고 천박한 조선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었던 성스러운 장소가 아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기독교기관들이 입성하면서, 종로 5가는 분열과 갈등의 중심이 되었으며, 잘못된 영성운동가들에 의해 ‘광란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광란의 질주’를 묵인하며, 이것이 마치 교인들의 은혜와 믿음의 척도로 가름하며, 교회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교회 내부를 넘어 사회 곳곳에서도 일반인의 범죄 못지않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만 보더라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목사가 자전거를 수 십대 절도했는가 하면,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고, 의료기사업을 벌인다며, 정부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등 범죄의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목사들의 범죄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목사들이 대거 참여한 은행설립 사기사건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사기사건이라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최근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성완종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교회의 장로이며, 집사라는 사실이다.

이것들은 교회 외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교회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목사의 영적이름아래 교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및 성추행사건, 교인들이 드린 하나님의 헌금 횡령, 교단공적자금 횡령, 건축비리, 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채 연합과 일치를 내세운 짝퉁 연합운동, 자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고소고발사건, 목회자와 교인 간에 일어나는 고발고소사건, 담임목사 세습 등등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한 결과에서 부른 범죄이다. 그것도 모든 범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의 아픔에 침묵

더 이상 한국교회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또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교회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기 보다는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는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하며, 일본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며 대한민국의 백성을 우롱했다. 한국교회에 우롱을 당한 백성들은 아리랑고개를 넘나들며,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국교회는 여기에서 멈추지를 않고, 6.25 한국전쟁 당시 남침한 북한의 김일성을 위한 기도회를 주최했는가 하면, 군사독재자들을 위한 기도회도 주도했다. 또한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외치던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군사독재정권에 적극 협력하며, 교회의 이익을 철저하게 챙겼다.

이런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한 채,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하면서, 우는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은 한국을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 천주교로 옮겨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정신 차리지를 못하고, 여전히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바벨탑 쌓기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침몰을 시작한 한국교회 역시 침몰이 가속화 될 것이다. 최근 미래학자 최윤식박사는 현재 한국교회의 여러 상황을 들어 멀지 않아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교회가 경쟁적으로 맘몬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가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사실 한국교회는 나라의 경제적인 위기와 교인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교회의 헌금도 줄어들었다. 그렇다보니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겨를이 그만큼 약화되었다. 또한 교회는 생명력도 잃어버렸다. 그것은 멀지 않아 한국교회도 영미교회와 마찬가지로 텅 빈 교회당의 시대가 다가 올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영미교회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하면서, 교회당이 이슬람사원에 팔려 나가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도 많은 교회가 이단에 팔려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인지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역사회를 떠난 교회는 죽은 교회나 다름없다.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문화선교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을 위한 청소년선교,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맞벌이부부들의 자녀를 위한 가정선교, 노인문제에 적극 대응,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고난당하는 이웃 등의 선교를 통해 인류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교회의 형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증언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음으로 표출하는 공동체(교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새로운 질서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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