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낮게

고개를 낮추고 허리를 낮추고

생각을 낮추어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메마르고 푸석거리는 마음밭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은혜.

▲ 정 재 영 장로
봄비가 은혜라는 말이다. 다른 계절에도 비가 내릴 턴데 어찌 봄비만 은혜를 표징하는 대상으로 동원하였을까. 서둘러 말하라면 봄비의 촉촉함에 있다. 그것은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폭력적이지 않는 이미지를 빌어 왔을 것이다.

이 작품은 계시록 3장의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전능하신 분이 일방적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 올 수도 있을 터인데, 젊잖게 두드리고만 계시는 것은, 그 분 힘이 약해서나 무능함에서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배려다. 이런 사랑의 태도는 그 상대를 존중해주는 인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확장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봄비도 부드러운 겸손에서 오는 촉촉함이 은혜가 되는 것이다. 만일 폭우의 장마나 태풍이라면 그것은 폭력적인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은혜의 진정한 의미는 무얼까. 은혜란 말뜻대로 거저주시는 선물이라 하지만, 대상을 인격적으로 고려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고개를 낮추고 허리까지 낮춘 자세, 그래서 ‘낮게’를 반복함으로 강조해서 표현한 것처럼 아주 낮은 자세로, 대상을 배려하는 자세가 바로 기독인의 특징임을 함축하고 있다.

주님의 은혜가 그럴진대 또한 우리가 복음이라는 은혜를 전달함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시인은 고개나 허리까지 낮추는 외양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적 사고도 겸손이라는 인격으로 베풀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즉 은혜의 동의어는 겸손이다.

이 작품은 은혜라는 막연한 관념적 정서를 봄비라는 이미지를 제시함으로 구체성을 가진다. 곧 봄비를 보면서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시적상상이라 한다.

한 가지 부연한다면 메마른 마음밭과 촉촉한 봄비의 양극화는 융합시의 특징적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선명한 이미지의 동원, 곧 이미지의 탱탱함을 구성하려는 의도임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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