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시린 날이면
양수리
두물머리로 가보게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몸을 섞으며 하나로 태어나는 곳
물안개 자욱이 산을 휘감고
아침 해가 느티나무 물속으로
밀어 넣으면
그리운 사람
고인돌 밟고 걸어 올 걸세

한 밤 내 고운 잠자고
수련이 배시시 문을 여는
안개를 걷어내면
수초들이 우아하게 머리 감는 곳

달개비꽃, 능소화, 나팔꽃도 고개 올려
시샘하지만
그리운 사람 바람 밟고 걸어올 걸세

▲ 정 재 영 장로
시가 비유라는 정의를 전제하고 읽어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정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론적 개연성이 확실하여야 하고, 그 해석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를 수긍하는 범위 내에서 인정할 수 있다. 이 말은 정답보다는 현답을 구하는 것이 시의 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비유 이외는 가르치시지 않으셨다는 말씀 속에도 아마 현답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설파하고자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마리아인의 말씀도 그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이라는 해석으로 읽을 때 비유가 된다.

예시의 두물머리는 본문에 양수리라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지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연에서 ‘ 물을 섞으며 하나로 태어나는 곳’이라는 말에서 두물머리는 합일(合一)되는 의미를 가진 비유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곳은 ‘물안개 자욱’한 산에 ‘아침 해가 느티나무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장소다. 단지 외형적인 물이 아닌 하늘을 비유하는 해와 세상을 비유하는 물처럼 서로 하나 되는 모든 곳을 지칭한다.

그곳은 수련이 문을 열고 안개가 걷어져 수초들이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내 새로움이 생기는 장소, 즉 합일 후에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는 융합적 요소가 있는 모든 장소다. 이 말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단순이 모이는 것이 아닌, 서로 하나가 되는 혼연일체의 새로운 모습이다. 두 강의 합일은 이념이나 사상을 뛰어 넘어 하나로 되는 통일성은 다양성의 함축까지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북일 수도, 빈부격차일 수도 있고, 신분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서 그리운 사람의 대상도 역시 부모님의 사랑이나 친구나 연인일 수도 있다.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화목케 해주신 주님으로 해석해도 정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에서 다양성의 융합이라는 시론에서 볼 때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