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으로 훈련된 자녀 양육, 철저한 부모 공경 지켜야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깨지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점점 다원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현대 사회의 가정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흩어진 가족들은 서로 간의 공감대와 유대관계가 적어질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게 된다. 또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해야 할 가정이 치유할 수 없는 갈등과 고통 속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비단 일반적인 가정뿐만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신앙적인 위기까지도 찾아오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가정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위기에 처한 기독교 가정의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자녀 양육의 문제
자녀에 대한 양육과 교육에 대한 고민은 비기독교인들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게다가 신앙적으로도 훈련된 자녀로 키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모든 부모들이 공감하고 있다.
특히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교육과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은 기독교 신앙을 겸비한 자녀를 키우기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기독교 가정에서조차 기독교 가치관을 기본으로 한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성경의 원칙대로 자녀교육을 하려는 각오도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면서 이러한 처음의 각오가 어느새 없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나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세라 과외와 입시를 고민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고3이 되면서 대학입시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교회를 잘 다니던 아이가 주일조차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됐다. 처음에는 교회생활에 충실하라는 권유도 많이 했지만 어느새 그 현실을 인정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학교생활에 지치고 과외로 바쁜 자식에게 주일날 강권해서 교회로 이끌지 못하고, 입시준비라는 핑계로 교회생활을 불성실하게 되는 것을 인정하게 된 셈이다”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속에서 기독교적 신앙교육에 우선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서에 입각한 자녀를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웃에 봉사하고 사랑이 가득한 자녀로 키울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 가정에서조차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나친 경쟁과 출세 위주의 교육이 학교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앙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몇몇 기독교학교가 있지만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기독교적 교육과 인성교육은 교회와 가정에서 감당할 몫으로 남게 된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에서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 이뤄질 때 자녀의 삶을 방향을 제시하고 인성을 키워주며 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입시와 학교교육이라는 틀로 교회 생활마저 내팽개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당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학교생활의 조화로운 삶을 가르쳐야 할뿐 아니라, 이들이 삶의 원칙을 몸에 배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인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삶에서 체현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럴 때 자녀들을 올바른 신앙을 갖춘 자녀로 양육할 수 있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오늘날 많은 어르신들은 가정에서 밀려나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서울 한복판 종묘공원에는 온 종일 어르신들이 넘쳐난다. 사회가 날로 고령화되면서 노령인구가 늘어난 것도 이유이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과 섬김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알다시피 십계명 중 다섯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가정과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이 늘어가는 것은 기독교 가정에서조차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온 한 어르신은 “교회와 가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으나, 70고개를 넘은 지금, 모든 일을 젊은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오늘 기독교인의 가정과 교회에서 어르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기독교인 자녀를 둘씩이나 둔 한 어르신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도 형편이 어려운지라 짐이 되기도 싫어 혼자 나와서 단칸방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자신들도 먹기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오지도 않을뿐더러, 경제적인 지원도 별로 해 주지 않는다. 자식들의 처지를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롭고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 가정에서조차 나이 든 부모들은 소외되고 버림받고 있다. 젊은 시절 교회와 가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지만, 교회에서도 또한 가정에서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 자녀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 모두가 부모 공경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또한 가정은 물론 교회와 사회에서 어르신들의 역할과 위치, 할 일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노령인구의 증가는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이다. 지금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도 언젠가는 노부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으로 키워 준 부모를 도외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는 물론 인간적인 도리에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패륜적인 행위임을 이 땅의 기독교인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 또한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이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 등 각 지자체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노인복지 개선을 위한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실천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 치유 시급
갈수록 이혼율이 급등하고 있다. 가정이 깨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혼이다. 기독교 가정에서도 쉬쉬하고는 있지만 이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경제위기로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이때, ‘돕는 배필’로서 부부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그러면 이혼을 줄이고 부부갈등을 해소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정사역전문가들은 부부문제 해결에 있어서 역시 중요한 것은 ‘대화기술’의 개발이라고 한다. 부부싸움에도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부부싸움은 비폭력적이어야 하며, 침묵도 대단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과 남의 가정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금기라는 것이다. 특히 부부싸움시 상처와 한이 되는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간의 대화기술을 원활히 할 수 있을까? 흔히 대화유형에 있어서 남자는 요약형, 여자는 확대형이라고 한다. 확대형은 상대가 충분히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낙담하고, 요약형은 간결한 대답을 원하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므로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TV드라마 얘기는 잘 알면서도 자신의 부부관계 상황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부부들이다. 이젠 부부가 눈을 마주보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다. 그것이 부부갈등을 줄이는 비결이다.
더불어 교회에서도 부부세미나나 부부교육 프로그램 등을 자주 열어 부부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행히 가정전문사역기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개교회에서도 많이 부부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아직 초기 단계라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부부간의 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교회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창조동산의 신비를 맛보며 살도록 하셨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보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도구요 방편인 셈이다. 이런 기독교 가정이 갈등과 해체 위기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교회는 기독교 가정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맺으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야 한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한다. 가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교회를 위해서도 가정을 돕고 지원하는 사역에 투자해야 한다. 성도들의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