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의 비밀

김 영 임

아무도 모르게 비단 실을 뽑아
밤새 놓은 자수위에
새벽을 타고 온 안개비
살포시 내려앉아 은쟁반이 되고
밤새운 그리움이 모여 영글은 이슬
마알간 구슬되어 맺혔네
순결한 덫에 내린 은빛 개비
사랑에 덫에 달린 은구슬
알알이 걸린 고은 풍경은
이른 아침 내걸린 숲속의 비밀

 

▲ 정재영 장로

시인은 대상을 다른 시야와 시각으로 본다. 이것을 심미안이라 한다. 적외선과 자외선처럼 일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낯선 부분까지 보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의 창작을 낯설게 만들기라 말한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브스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영향을 받은 프라하의 야콥슨 등이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의 신비평의 주류인 엘리엇, 랜섬, 테이트, 리처즈 등의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중요한 이론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것은 결국 비친숙성에서 컨시트(기발한 착상)를 찾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동전달의 의도적 배제다. 그것은 일반적인 상상을 연상이라 한다면 시는 그 연상을 뛰어넘는 창조적 상상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거미줄의 비밀은 곧 마지막 행의 진술처럼 ‘숲속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비밀이란 알 수 없는 것을 말하지만, 실은 숲에 숨겨진 비밀을 거미줄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미줄에 걸린 이슬이 외형상의 모습은 구슬이지만 동시에 구슬을 담는 은쟁반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은쟁반에 담긴 구슬은 성경에서 말하는 은쟁반 위에 금 사과(잠언 25:11)를 연상하게 된다. 그것은 거미줄에 걸린 이슬에서 창조적 존재의 능력을 가장 정확히 알게 된다는 것으로, 숲의 여러 가지 비밀들을 함축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암시성과 함축성을 동시에 숨겨 말한다. 은폐시킨 비유, 즉 은유라는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달린 이슬 한 방울에서 거대한 산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려는 절제된 언어가 곧 시다. 설명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나 평설과 반대로 시는 숲속의 비밀을 숨겨서 드러낸다. 다만 감각적으로 느끼게 할 뿐이다. 이처럼 시의 태도는 애매하게(ambiguity)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정확하다는 모순적인 진리를 가진다.

예시처럼 극히 작은 사소함에서 거대한 우주적 진리를 말하려는 이중성의 작업이 곧 낯설게 쓰기의 방법론이다. 이 상반성의 통합성이 융합시론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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