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는 기독교의 핵심가치이자,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용서와 화해보다 서로 공격하고 헐뜯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사회의 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혈전을 치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송사를 벌이는 교회가 1000여곳이 넘을 정도로 교회분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성도와 성도, 목회자와 성도, 교회와 노회, 노회와 총회 등 교회분쟁의 주체도 각양각색이다. 목회자나 성도 모두가 세속적인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감당을 포기하는 불순종을 저질러 버렸다. 이러한 교회분쟁은 결국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슴에 시퍼런 멍 자국을 만들고, 한국교회 전체의 신뢰성마저 실추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탄의 작품이라고도 불리는 교회분쟁을 세상법이 아닌, 기독교의 본질인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회분쟁 어디까지 왔나

작금의 한국교회의 교회분쟁 사례는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쉽게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대형교회뿐 아니라, 중소형 작은교회에서도 분쟁은 쉬 잠잠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은 겉으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으로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으나, 실상 서로를 향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괴리감만 키웠다. 진보를 대변한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총무선거를 둘러싼 갈등으로 부끄러운 민낯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특히 예장 통합은 자파후보가 총무선거에서 떨어지자 총회 현장에서 무단으로 퇴장하는 행태까지 보이는 등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2008년 감독회장 당선자 문제로 시작돼 근 7년여간 소모적인 분쟁에 휘말렸던 감리교 사태도 가까스로 법적공방에 종지부를 찍었으나, 언제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리교 사태는 최근 감신대가 따라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한국교회에 심각한 타격일 입힌 장본인이다.

연합기관과 교단 등에서의 분쟁뿐 아니라, 개교회의 분쟁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개교회의 분쟁이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한국교회의 이미지 실추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내로라하는 대형교회인 S교회는 담임목사의 논문표절로부터 시작해 수천억원대의 예배당 신축과 관련한 공사비 의혹, 담임목사의 재정유용 의혹, 담임목사의 권한을 강화한 교회의 정관개정 의혹 등으로 논란이 지속돼 법적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올해 4월 서울고등검찰이 S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반대측의 교회재정 횡령 및 배임혐의에 대한 항고를 기각해 급한 불은 껐으나,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B교회도 후임 목사 청빙을 둘러싼 분쟁이 급기야 사회법정으로까지 이어졌고, 1천여명이었던 성도수는 분열을 거듭할수록 줄어 어느덧 100여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까지 처했다. 원로목사와 후임목사와의 완력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이 교회는 후임 선정에 있어 하나된 의견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주고 있다.

J교회 사태도 심각성은 여전하다. 담임목사가 교회 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분란을 겪었던 이 교회는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갈등을 봉합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노회에 가입돼 여전히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다. 최근 새로운 담임목사가 위임됐으나 이마저도 적법성 논란으로 시끄러울 전망이다.

국내 최대의 교회로 정평이 나있는 Y교회도 원로목사와 장남이 주식을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해 교회에 130여억원대의 손해를 입히고, 50여억원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아 물의를 일으켰다.

또 차기 한국교회 지도자로 급부상헀던 S교회의 K목사의 경우는 자신의 커리어와 어울리지 않게 성도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공분을 샀으며, 급기야 자숙 후 곧바로 새로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분쟁을 지속하고 있는 K교회도 둘로 갈려 예배를 따로 드리는 등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H교회와 G교회도 원만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사회법정에까지 손을 벌려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 목회자나 성도 모두가 세속적인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감당을 포기하는 불순종을 저질러 버렸다.
횡령 및 배임 등의 재정전횡이 교회분쟁의 주된 원인 지목
담임목사 중심의 교회운영과 윤리적 자질 부족도

교회분쟁 왜 일어나는 가

이처럼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분쟁은 비일비재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하도 많아서 더 이상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흔하고 일상다반사가 된 느낌이다. 도대체 무엇이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분쟁을 이렇게 풍요롭게(?) 만들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문제상담소가 지난해 대면, 전화, 이메일 등으로 진행한 상담 131건을 분석해 얻은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교회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재정전횡’에 있다. 교회재정을 횡령하거나 배임하는 등의 문제로 교회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 언제부터인가 교회의 외형적 규모가 맘모스화 되면서 덩달아 교회재정도 커지게 됐고, 이는 곧 인간의 욕심도 바람이 가득한 풍선처럼 크게 만들었다. 결국 세속적인 욕망에 눈을 가린 목회자는 교인들이 낸 헌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자신의 개인적 재물욕을 채우기 위해 마음껏 교회재정을 유용했다. 한번 재물의 달콤함에 빠진 목회자는 욕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교회를 무너트리고, 성도들을 실족케 만들었다.

교회분쟁이 갈수록 증가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모든 것이 ‘담임목사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에 있다. 한 교회의 맨 윗자리에 앉아있는 담임목사의 일방적인 권위가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담임목사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인해 민주주의적인 의사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비합리적인 불통의 의사구조가 정착되어 갈등을 확대시키고 있다. 담임목사와 성도들의 한번 틀어진 관계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안에서는 담임목사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성도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할 정도다. 이들에게 진실은 담임목사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것이지, 옳고 그름을 따져 정도를 가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교회분쟁의 원인으로는 목회자로서의 윤리적인 자질부족에 있다. 단지 신학교를 졸업했을 뿐, 목회자로서의 갖춰야할 인격과 도리가 성숙되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유독 많이 발생하는 성폭력, 폭력, 사기, 성추행 등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인 범죄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설교를 뛰어나게 하고, 말주변이 능수능란해 차기 지도자라고 칭송받기도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모습뿐이다. 이는 넘쳐나는 신학교에서 졸업생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배출해 내고는 있지만, 개개인의 성향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장차 범죄자를 양산해내는 꼴이다.

교회분쟁을 부채질하는 데에는 재물을 탐하거나 담임목사 중심으로 흘러가는 교회의 체질, 목회자의 윤리적 자질부족 등 근본적 원인도 있지만, 분쟁이 발생했을 시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사회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집에 있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 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방법을 간구했다. 오히려 교회 안의 분쟁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분쟁은 촉각을 다퉈 사회법에 올려놓고 본다. 그리고 교회분쟁의 종지부는 사회법정의 판결이 쥐고 있다. 따라서 간단하게 문제 당사자들끼리 대화로 풀 일도 법정까지 끌고 가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대서특필해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실추에 공헌을 하는 셈이다. 사회법정의 판결이 외형적으로는 문제해결의 척도는 될 수 있으나,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은 것인지는 장담을 못한다.

교회분쟁 해결의 실마리는

교회분쟁의 마침표는 최악의 경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일까지 초래한다. 또 성도들끼리의 다툼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만든다. 그만큼 교회분쟁이 가져오는 악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교회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최소화해 상처의 크기를 줄여야 무너지는 교회를 살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분쟁이 발생을 현저히 낮출 필요가 있다. 교회의 분쟁을 낮춘다는 것은 곧 교회분쟁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것을 해결하면 된다.

먼저 교회재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던 재정전횡의 경우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교회안의 재정은 누구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개인적 재물욕에 의해 갖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애초에 교회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힌다면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재물과 관련된 다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권력과 명예, 타락 등 세속적인 욕망을 쫓지 말고, 회개와 각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목회자와 성도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교회재정 운영에 있어 투명성과 건강성을 살릴 수 있도록 감시망을 마련하고,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재정장부 열람을 교회정관 등에 명시화해 목회자나 성도나 서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병폐라고도 볼 수 있는 담임목사 권력중심에서 탈피해야 교회분쟁을 막을 수 있다. 담임목사에게만 권력이 집중될 경우 사랑의공동체가 되어야할 교회가 소위 집단이기주의집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특히 담임목사의 부당한 것을 보고도 담임목사의 권력에 대응하지 못한 채 ‘나 몰라라’하는 행태로 묵인해 독버섯을 키울 수 있다. 이는 훗날 담임목사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의 완력다툼으로까지 번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이를 계속해서 지켜만 본다면 권력의 꼭짓점에서 단물을 맛본 담임목사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하나님의 재물을 탐하거나, 성도들을 성추행하는 등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할 여지를 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담임목사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의 교회라면 반드시 목회자와 성도들의 균형이 올바르게 잡히도록 중심을 세워야 한다. 또 부당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할 수 있는 신문고와 같은 제도도 마련하고, 불합리한 교회정관이 명시되어 있으면 이를 개선해나가려는 노회와 총회의 관심도 필요하다. 간혹 노회나 총회가 본분을 잊고 파렴치한 행위를 한 목회자를 두둔하거나, 치리에 있어 시간을 지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교회 전체를 좀먹게 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여 목회자를 양성함에 있어 반드시 윤리적 자질도 단단히 수련시켜야 한다. 훌륭한 목회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얼마나 멀리까지 풍기느냐에 있다. 제아무리 빼어난 외모와 호사꾼 같은 말재주가 있다고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 신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을 기계로 찍어내듯이 배출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말고, 얼마나 제대로 된 주의 종들을 배출시키는가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키우되, 모든 것에 앞서 인성을 키워주고, 목회자로서 성도들과 다툼 없이 든든히 서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법까지 가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설령 교회분쟁이 발생했다고 해도, 이를 교회 내부, 교회법의 테두리 안에서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사회법정에 손을 내밀어 답을 구하는 세속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집과 편견, 아집을 버리고, 하나님이 정해준 원칙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회와 노회의 재판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대한 독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고, 예외 없이 원칙과 기본을 지켜 나가야 한다.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원칙을 어겼을 때 분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평소 친분이 있다거나 돈과 권력에 얽매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는 교회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후퇴시킬 뿐 아니라, 또 다른 분쟁을 야기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믿는 신뢰감을 쌓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서로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의심하는 불치의 병이 해결되는 것을 되짚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교회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십자가 정신으로 돌아가서 성경적 가치관을 세울 때 교회분쟁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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