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오후, 성소수자들의 퀴어문화축제와 이를 반대하는 동성애 반대 교단 연합집회가 주일 서울 한복판을 들썩이게 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나 외국인관광객 차지가 됐을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웃지 못 할 광경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표방한 퀴어축제는 해마다 열려왔다. 지난해 서울 신촌일대에서 열렸을 때도 보수 기독교단체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쳤지만 올해는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장소로 허락하면서 개막식부터 거센 찬반논란에 휩싸였다. 더구나 올해는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의 합헌을 판결한 직후여서 축제에 참가한 동성애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보였다. 이들을 지지하는 16개국 주한 외국대사관들은 시청 광장에 부스를 마련하고 행사를 후원했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은 성소수자로 불리며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해마다 서울시내에서 축제를 열기를 고집했던 이유도 문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자기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려는 저항의식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만 놓고 볼 때 이 땅에서 성소수자들이 과연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의 막강한 행정력과 차기 대권주자로 불리는 박원순 시장까지 쥐락펴락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대사들까지 후원자로 끌어들일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과시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이들 축제를 후원한 기업과 단체의 면면을 보면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그들은 경찰이 가두 퍼레이드를 불허하자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당한 법적 권리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들의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눈에 가시같은 반대집회까지 못하도록 법적 재갈을 물리려 시도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 교단과 연합기관들 마저 주춤하게 만든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서울 한복판을 돌며 온갖 난잡한 짓을 벌인 그 뻔뻔함과 배짱에 있다.

이 쯤 되면 그들이 해마다 써왔던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억압하지 말라는 구호는 스스로 거둘 때가 됐다고 본다. 그들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며 인권사각지대에 있지도 않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퀴어축제를 계기로 그들은 더 이상 음지가 아닌 양지에 우뚝 올라섰으며, 소외받고 천대받던 ‘을’이 아닌 제대로 된 ‘갑질’을 보여준 셈이 됐다.

문제는 그들이 아닌 한국교회이다. 한국교회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추악한 죄악이며 우리 사회의 건전한 성가치관이 무너질 경우 나라에 존립을 흔들릴게 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해 왔다. 퀴어축제 개막을 앞두고 구성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에 주요 연합기관과 개혁성을 표방한 단체들 까지 참여하면서 모처럼 한국교회의 힘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그러나 메르스 확산을 우려한 국민적 여론을 의식해 퀴어축제 개막식 당일에 준비했던 대규모 반대집회를 취소하는 과정에서 내부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또다른 이름의 급조된 주최측이 탄생하게 됐다.

동성애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인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보너스로 당당함과 자신감까지 얻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계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기독교국가라고 칭송하던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그 나라 대사가 동성애자들과 하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씁쓸한 배신감, 그것으로 끝나면 한국교회는 또 당한다. 제발 정신 바짝 차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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