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최대 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나온 현대 사회분석을 보면, 1960년대부터 사회혁명이 일어났다고 지적하였다. 뉴욕에 있는 콜롬비아 대학교 챨스 머레이 교수는 인종이나, 종족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회 계층으로 나뉘고 있는 미국 백인 사회의 현상을 비교해 제시했다. 그의 책, 「양극화」에는 극도로 빈곤한 백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가난한 흑인계층과 라틴계층이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이루고 있다.

머레이 교수는 백인 중산층의 축소화 현상에 대해서 성급하게 원인을 따지려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더구나 외국 이민을 줄이려하거나 인종주의에 빠져서 다른 유색인종들을 경멸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보다 면밀하게 현상을 인식하라고 촉구하였다. 그의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에 미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부자는 더욱 더 잘 살게 되어 지고, 가난한 자들은 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45퍼센트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이제는 쪼그라들어버렸고,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고 말았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들을 조사해 보면, 상류층은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엄청난 수입을 올리게 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생산성보다는 자본의 수익률이 월등하게 더 높다. 만일 이 최상류층이 계속해서 수익만을 창출해 버린다면, 가난한 자들은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진 자들은 남을 포용하는 미덕과 자애로움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머레이 교수는 공존하려는 마음을 회복해야한다고 지적하였다.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길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두 바퀴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굴려야만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멈추면 제자리에 서게 되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계속해서 쉬지 못하고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제대로 한번 마음 편히 몸과 마음이 위로를 얻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이치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생살이에서 고통과 상처받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를 삼고자 한다.

하늘에서 온 위로

상처 입은 인간을 찾아오시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성경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가련함을 돌아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는 초월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살려낸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라고 체험자들은 증거 하였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계속해서 강조하였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롬 15:5)이 소망을 넘치게 주신다고 격려하였다. 하나님의 위로는 단순히 먹는 것이나 마실 물로 내려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용서를 받은 기쁨과 행복한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것을 말한다. 또한 위로와 힐링은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때에 체험되어진다. 내가 바라는 것들이 순탄하게 이루어져 나갈 때에,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감격적인 만족을 누리게 하신다.

# 자식은 웃음이어라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25년 만에 약속을 이루어주셨다. 자식으로 후대를 이어가고자 했던 아브라함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인간적인 방책을 내서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얼른 빨리 자식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래서 몸종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다메섹 사람 하인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으려 간청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편법을 정당한 후손이 아니라고 거절 하였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언약을 실행에 옮기셨다. 고향 산천을 떠나서 멀리 타향에서 늙어가던 부부에게 늦게나마 웃음꽃이 피었다. 여자로서는 출산할 기능을 벌써 오래 전에 상실했던 여인 사라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나이 들어 소망이 없던 사라에게는 불가능한 나이에 외아들 이삭을 얻어서 “웃음”을 회복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6). 아들을 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면서 드러낸 사라의 웃음은 하나님의 위로였다. 자식은 어머니에게 주시는 웃음이요, 위로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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