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기원전 1445년(?)경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혹독히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모세를 통해 홍해바다를 건너는 출애굽 사건을 겪는다. 출애굽 홍해바다 사건은 긴 세월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 남녀노소 모두를 홍해 바다 물속을 지나게 해 백성 전체를 이방 세계에서의 우상숭배와 불신에 젖었던 삶을 깨끗하게 정화 하는 과정으로, 이를 고린도전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세례라 표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태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동안 이교의 풍습과 우상숭배의 종교성과 종(從)의 근성을 모두 광야에서 버리게 만든 후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입성토록 하셨다. 그것도 가만히 앉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이방인들과 피 터지는 전쟁을 통해 이루도록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한 동안 시내 산에 올라 하나님의 법을 받는 그 사이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창조주요 출애굽을 허락한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후 섬기며 절하고 광란의 찬치를 벌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광야에서 출생한 자 출애굽한 모든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셨다.

광야 40여년의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태어나는 기간이었다. 애굽에서 먹던 음식 대신 하늘의 만나를 먹게 했고, 애굽의 나일강물을 마시던 것을 대신해 반석의 물을 마시게 했다. 먹고 살아가야 하는 식생활을 하나님의 신령함으로 대치 한 것은 종의 근성과 세속의 찌든 때를 한 세기동안 정화시키기 위해 광야의 40년은 실제 세상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거듭나게 하는 백성들의 정화 시기였다.

광야 교회는 비록 구약의 모세의 율법에 의해 백성들을 다스리던 시기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가나안으로 들어간 백성은 세속을 정화한 새 사람들로 구성 되었었다. 그리고 가나안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함을 오늘 성도들에게 보여 주고 있음도 아는지? 오늘의 교회를 이룬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신앙인의 자세를 알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현재 자리에 안주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래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필요로 할까?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입성 하는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한 일종의 광야와 같은 곳이다.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출애굽한 성도들은 세상 수전노의 근성, 황금 우상숭배를 모두 광야에다 버려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믿었던 아론과 함께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절하며 섬기는 죄 때문에 출애굽한 모든 백성들이 다 멸망을 당한 것처럼 자칫 이 세상의 황금을 우상과 같이 섬기는 백성들이 멸망을 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세상과 거룩함으로 구별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성(聖)속(俗)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요즘 일부 교회가 실제 제사(예배)보다 젯밥(현금)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교회도 최첨단 교회건물, 지역 은행의 브이아이피 대접, 세상 사람들로부터 성공한 교회로 인정 등을 교회 명함으로 내세우려 한다. 역시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황금 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아론과 같이 오늘 날의 목회자들은 잘 지어 놓은 건물을 하나님의 성전라고 하여 최첨단 건물 봉헌을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감언이설도 세속 종교와 매 한가지다.

기독교의 가치하락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말하는 축복의 개념이 세상이 추구하는 황금만능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의 유지, 신앙의 정체성 유지, 신의 성품 유지, 경건성의 품위 유지, 물질이 있기 전 인간의 태고의 안식의 원형과 십자가의 속죄의 진정성을 교회를 찾아와 신(神)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만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너무 세속적이고 낡아서 기도가 공허하고 신의 성품 보다는 세상 물욕의 섞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면 그것은 건물만 거룩한 교회처럼 보이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세운 교회가 아니다. 사람의 영혼 구원 중심이 밀려났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제 교회는 세상의 섞은 모습, 돈으로 치장한 모습, 성도들 보다 건물이 더 호화로운 모습, 가난한 자보다 부자에 관심을 갖는 세속적인 생각의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교회라는 아름다운 신의 성품을 보면서 세상의 욕심으로 얼룩진 죄 성을 버리게 만드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려 물과 피를 흘려 다 주었다고 하신 것처럼 무소유 교회만이 세상을 정화 할 수 있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교회가 아닐까?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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