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앞둔 주일인 9일, 오후에 서울시청앞 광장을 비롯, 도심 한가운데서 대규모 기도회가 열린다. 광복 70주년이란 타이틀이 걸려있지만 모처럼 1천만 한국교회의 세를 결집하고 과시하는 목적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 기도회는 올해 신년 임진각 기도회를 시작으로 통독의 발판이 되었던 니콜라이교회 월요모임을 본 따 매주 월요일마다 명성교회에서 열린 평화통일기도회가 개교회를 벗어나 ‘한국교회’ 전체의 집회로 부상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번 기도회는 보수성향의 연합기관마저 갈라진 마당에 딱히 누구를 대표성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WCC총회를 유치한 전력이 있는 인사를 주축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뜸했던 시청 앞 대형집회에까지 연결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여름에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대형집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특정인이 과연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도회가 성사된 것은 결국엔 재정 부담과 인원 동원 능력에서 한국교회 안에서 그만한 힘을 보유한 인사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광복 70주년에 서울 한복판에서 수 십 만 명이 모여 기도회를 여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까. 과연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 이후 70년의 시간을 반추하고 정리하는 것이 대형집회 뿐이었을까 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큰 아쉬움은 70이라는 숫자에 대한 해석이다. 주최측은 광복 70주년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해방’에 연결하면서 분단의 청산과 통일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이번 기도회의 가장 확실한 개최 목적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광복 70년의 의미를 성경상의 숫자로 꿰맞춰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성경에서 남북 분단시대는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까지 약 208년이나 지속되었다.

물론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38선에 의해 분단된 나라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분단 70년을 성경의 바벨론 포로생활과 일치시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과 연합기관까지 참여하는 집회에서 역사를 의도된 목적에 따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또 복음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교인들을 동원하는 문제이다. 어차피 대형집회는 인원을 얼마나 동원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모이지 않을거라면 굳이 휴가시즌도 끝나지 않은 한여름에 서울시청 앞으로 교인들을 불러 모을 이유가 없다. NCCK가 광복 70주년 기념예배를 서문교회에서 조촐하게 갖기로 한 것과도 대조가 된다.

주최측은 최소한 30만 명을 동원 목표로 정했다. 이에 따라 당일 교통 통제 등 협조사항을 경찰총수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주최측의 바램대로 30만 명이 모인다면 서울광장은 물론 광화문과 숭례문에 이르기까지 가득 덮이게 된다. 그런데 30만 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혹시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열렸던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대규모 불교 행사에 추산 인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아닐까. 불교계가 30만 명 모였으니 우리도 그 이상은 모여야 한다는 단순논리가 아니길 바란다.

한국교회가 70년을 돌아보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단연 회개이다. 해방이후 70년간 세속적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통렬한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사회 속으로, 대중 속으로 스며드는 눈물겨운 노력, 그 단 한 번의 실천이 대형집회 열 번 보다 더 시급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