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성직자라고 할 수 있는가? 성직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인데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유지해야 할 책임 뒤따른다. 사실 목사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단 한군데 그것도 의역을 해서 목사라는 직분을 억지로 번역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그러니 사실 솔직히 말하면 목사라는 단어가 성경의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목사들은 알면서도 동의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보다 목회자들이 더 문제를 일으키는 예가 많았다고 본다. 사실 목회자도 세상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회 생활인이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갖는 성욕 명예욕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자연스러우며 살아 있는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어디까지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일부이고 어디까지가 성직자가 지켜야 할 윤리적인지 그 경계선이 애매하다. 인간이 소유해야 하는 부의 척도가 어디까지 양해되고 어디까지 지탄과 혐오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도 그 경계가 모호하다.

사실 교회가 존재하는 이 사회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라 민주주의 나라이다 보니 종교도 재량껏 재물을 축척할 수 있고, 그 축척한 재물의 유무에 따라 신도수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는 본래 교회 자체가 세속적인 물질을 축척하는 것 보다 교회에 유입된 재화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과 과부와 고아들을 위해 사용하는 원칙을 성경은 계시했는데 교회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 교회들은 그 교회를 형성한 교인들의 형편과 역량에 따라 수입된 헌금을 성경의 계시대로 사용하는 것 보다 그 교회가 교인들의 총의를 통해 하되 본질적인 일이 아닌 비본질적인 일에 헌금을 거의 사용해 오로지 교회의 부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중지를 모은다. 그것은 건물의 현대화, 초대형화, 교회 건물의 다용도화다. 그 이유는 잠재적 선교와 전도라는 명목과 자체 교우들의 편의 제공을 이유로 유휴공간에 백화점식 마켓을 열고, 교우들의 건강 증진과 선교와 전도를 위해 휘트니스 클럽을 만들어 사용한다. 이 모든 일이 막대한 교회의 헌금이 투입 되는 일이다. 이러한 편의 공간에서 헌금 이외에 수입되는 재물의 사용처가 대다수 불분명하다 보니 이러한 일로 인해 교회는 여유자금 관리로 인한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래 교회는 교우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헌금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중대형 교회들의 사업구상은 자유스럽게 하되 교회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성경의 기준에 의해 실행한 후에 그 결과를 놓고 만약 이익이 발생 하게 되면 전액을 구제와 봉사와 선교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부실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절대 권한을 가진 목회자들이 이러한 세상의 이재수단에 청렴결백하다면 무슨 잡소리가 있겠느냐 마는, 견물생심 이라는 말과 같이 목회자들도 눈앞에 이익에 약한 행동이 교회를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하는 일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다. 교회를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신령하고 거룩하게 생각함과 동시에 인생 삶의 피곤함과 피로가 쌓이고, 고단하여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오는 좌절감, 실패와 낭패를 당할 때,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이 밉고 이웃이 미울 때에 오는 감정을 달랠 수 없는 때, 마지막 방법으로 먼저 교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런데 교회를 신령하게 리드해야 하는 교역자 즉 목회자들이 만약세속에 찌들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 한다면 교회는 신령함을 세상에 나타낼 수 없다. 교역자의 보이는 신앙과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가 평소에 가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자세, 불의에 대한 생각, 작은 이익에 의연한 태도, 교회가 본래 해야 하는 일보다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습관, 교우들을 배려하는 유무에 따라 성도들은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려 하지만, 교역자가 정당한 일 처리에 대해 바르게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성도들의 호응은 바랄 수 없고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본래 생명 구속의 사역을 감당 할 수 없게 된다.

한국교회는 가족의 희생, 개인의 자유와 생활, 목숨까지 버린 순교자들의 희생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다. 그런데 너무 과한 욕심을 가진 일부 부자교회의 빗나간 행동과 상식이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감투에 눈이 어둡고, 물질 욕심에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이 연합모임에서 함부로 이단을 정죄하고, 단체장 되기 위해 세상 행위보다 더 더러움이 화근이다. 목회자의 신의 성품 회복이 세상의 출구임을 아는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