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희 신 목사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광화문 빌딩 앞을 지나는데 교보문고 글판이 눈길을 확 붙잡았다. 오늘날 우리 가정과 사회를 너무도 적절하게 담아낸 말인지라 한참 서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발췌한 것인지 궁금해 원문을 찾아봤다. 정희성 시인의 ‘숲’이라는 작품이었다.

전문은 이렇다.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이 글판을 보면서 우리 사회와 가정의 현실과 아울러 ‘교회’가 떠올랐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사분오열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교회 말이다. 수많은 교단은 교단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교인은 교인대로, 우리 모두가 ‘제각각’ 서 있다. 조금도 ‘숲’을 이루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여 개의 교단으로 갈라진 현 한국교회의 분열사는 결코 신학과 교리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교단들이 세속적인 욕심과 이해관계, 교권다툼으로 갈등에 갈등을,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자부하는 교회가 오히려 분열과 다툼을 조장하고 앞 다퉈 서로를 정죄하며 오늘날의 지경에 처한 것이다.

곧 있으면 장로교단을 비롯해 각 교단의 정기총회가 일제히 개회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는 교단 내 현안을 논의하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이다. 총회의 이슈들이 심도 깊게 논의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부 정치목사와 정치장로들에 의해 금품선거가 이뤄지며 온갖 불의와 불법이 판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큰 문제는 총회 시즌이 끝나고 나면 또 다시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이 재연된다는 것이다. 총회 현장에서는 교권을 유지하고 쟁취하기 위한 살벌한 다툼이 항상 있어 왔고 이에 따라 정치세력들의 아메바식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군소교단으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극심한 양상을 보인다.

제가끔 서 있는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숲을 이루는 것은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 동안의 분열과 다툼을 뒤로 하고 ‘숲’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중심적인 독선에 빠져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이를 틀린 것으로 몰아붙이고 비난하며 나아가 정죄하기에 앞장선다면 한국교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가 왜 ‘숲’이 아닌지를.

예장 통합피어선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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