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그리움이
뚝뚝 떨어져
그리워서
지친 목 길게 빼고

가을의
달빛 속에
귀뚜라미
우는 밤이면

고향집 문간방에
아버지
바튼 기침 소리
새벽달이 기운다.

차마 부르지 못한
붉은 가을은
처연하게
스러져 간다.

▲ 정 재 영 장로
‘귀뚜라미가 우는 밤’이란 가을밤을 말함이다. 그것도 한걸음 나아가 귀뚜라미의 울음에서 청명한 날씨의 저녁임을 상상하게 한다. 두 째 연에 나오는 달빛이 그것을 더 확인시켜주고 있다. 즉 울음이라는 청각과 달빛이라는 시각의 이중적인 효과를 통해 소란과 고요가 동시에 존재하게 진열하고 있다. 그 결과 소란이 만든 고요와의 이질적인 요소가 만드는 시너지 효과로 상승된 정서적 반응을 감각할 수 있다.

첫 연에서 그리움이 노랗다 함은 국화의 꽃잎이나 은행잎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무르익은 가을의 정취를 통해 수용된 어떤 그리움이다. 여기서 ‘어떤’이라 함은 예시에서는 구체적으로 ‘뚝뚝 떨어져’라는 말에서 농익은 그리움인 것이다. 즉 그리움은 봄 여름을 지난 절기로 보아서 완숙함으로 이루어진 정서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인간과 절기를 연결코자 함이다.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통해 한 밤이 다 간 새벽이미지를 동원하여 인생의 시기를 말하려 함이다. 귀뚜라미 울음이 만드는 자연적 가을정서의 조화로움과 노쇠한 인간의 기침 소리의 불규칙하고 거슬리는 부자연스러운 ‘바튼 기침소리’를 대비함으로 존재탐구에 자연적 절기와 노쇠함의 아버지의 중첩 이미지를 통해 관념적인 존재에 대한 담론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알게 해준다.

이 가을은 세월이라는 숙명적 결과 앞에서 숙연해지는 존재, 아주 가볍고 작은 자아의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처럼 ‘처연하게 스러져’ 가는 불가항력적인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한 가을 밤이 다가도록 ‘처연한’ 달빛은 화자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지켜보는 대상이다.

가을의 지난 세월의 모든 그리움을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귀뚜라미의 울음을 의도적으로 이중적인 배합을 시도하여 새로운 가을을 해석해 나가는 면은 융합시가 노리는 창조적 작업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