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주검을 보았다
거적대기에 덮여 있었다
왼손 손목께와 바른발 발목께가 빼꼼히
드러나 있었다

<혈육(血肉)의 의미 말고도
참말로 이 주검의 임자는 없는 것일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어린 아이의 손목을 잡은 중년 부인이
발길을 돌리며 퉤, 퉤,
침을 뱉았다
꽃초롱 같은 눈을 반짝이며
어린 아이도 퉤. 퉤,
침을 뱉았다
많은 사람들이 물러섰다가 돌아서며 퉤, 퉤,
침을 뱉았다.

거적대기 위에 잘게 쓸리는 햇살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주변에 흥건한
침자국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한 노인이 오래오래
하얗게 서 있었다

▲ 정 재 영 장로
응시라는 말 안에는 바라보는 주체와 살피는 대상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응시 주체는 화자이며, 그 대상은 거적대기에 덮여 있는 주검이다. 그것은 다 덮지 못해서 손목부분과 발목부분이 드러내져 있는 주검이다. 거적대기라는 물건은 주검의 가치가 얼마나 무가치인가를 보려주려 함이다.

2연에서 주검은 더러운 쓰레기와 같은 의미밖에 없는 육체를 말하고 있다.

3연은 2연을 부연하는 말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주검을 인식을 그리고 있다. 침을 뱉었다함은 불쌍함이 아닌 더러움을 말하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주검은 인간생명을 보존했던 고귀한 육체가 아닌 저절로 침을 뱉게 되는 더러운 모습이다. 쓸모없는 단순한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신과 육체의 이분적인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있는 중년 부인은 주검의 손목을 보면서 역겨움을 느낀다. 손목이란 아이나 주검이나 육체의 같은 장소다. 그러나 아이는 혈육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감각적인 연결 장소다. 손목을 잡는 인간관계 설정의 은유로 산 사람의 손목과 주검의 손목 부위의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가치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어린 아이의 동일한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원형심상을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주검을 응시하는 화자는 생명의 기원인 빛과 피조물인 주검을 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지상적인 인간과 천상적인 햇살을 중첩시켜 양극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주검 앞에서 모두 침을 뱉으면서 돌아서지만 빛으로 상징되는 햇살은 오히려 주검을 살핀다는 의미를 통해 신(神)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 놓고 있는 것이다. 하얗게 서 있다함은 화자와 빛과의 반응이다. 햇살의 의미와 합일된 응시의 모습은 영혼과 육체의 가치를 대비시켜 참 인간이란 영혼과 육체가 융합되었을 때만 진정한 가치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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