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날 날을 잡아 울고 싶다
딱히 슬플 일은 없지만
사치를 부리고 싶은 건가

눈물은 마음 속 깊은 계곡을 휘돌아 흐르고
속 가슴을 쓸고 가는 물줄기 있어
긴 세월 담아오던 앙금을 녹인다

봄비가 오면
한바탕 울어야지

▲ 정 재 영 장로
차가운 겨울을 녹이는 봄비는 녹인다는 온도적인 점에서 보면 봄비와 눈물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 2연에서 이런 전제를 더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음속을 흐르는 계곡물이 속가슴 앙금을 녹인다는 말은 눈물이 봄비처럼 인간의 눈을 녹이고, 계곡으로 흐르게 하여, 겨울을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결국 봄비가 겨울을 지우고 봄을 만들 듯 눈물은 인간의 새로운 모습으로 전환에 대한 기능을 말하고 있다.

이 눈물은 무얼 말할까. 슬퍼서 생기는 눈물이 아니라는 걸 보면 단순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상을 확장한다면 겨울같이 굳은 마음이거나 냉정한 마음을 녹이는 눈물이다. 자기 속마음의 앙금이란 자기 자신에 갇혀 토로하지 못하고 환경적인 요건에 의해 해소하지 못한 사건들의 정서다. 환경과 시간을 거치면서 생긴 동맥경화 같은 정신적인 내적 찌꺼기 등을 상상하게 한다. 이것을 녹인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요, 뉘우침을 통한 새로운 존재의 회복이며 깨끗함이다. 그것을 신앙인에게는 회개라 할 수 있다면, 봄비는 외부적이고, 눈물은 내면적인 것을 말함으로, 전자는 회심의 동기가 되는 성령의 사건이요, 후자는 성령에 연하여 반응하는 회심의 상태를 말한다.

눈물을 비롯하여 눈과 연결되는 단어들인 눈동자, 눈빛 등의 상징은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말함과 같이 대부분 정신이나 영혼을 암시한다. 예시는 봄비처럼 지움과 동시에 새로운 절기를 이끌어 오는 외부적인 요인과 내적인 눈물처럼 자기 반응을 통한 새로움의 생성을 보여주고 있다.

‘봄비가 오면’이라는 가정법에서 눈물은 내적인 힘에 아닌 외적인 요소나 타적 동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을 변화시켜주는 봄의 절기는 시간을 주관하는 신의 힘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신앙이란 자각의 힘이 아닌 외적 은총임을 은유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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