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내용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전문적으로 성경의 핵심 주제들을 공부해오면서 신학자들의 글을 오래동안 연구해온 처지에서도 솔직히 어렵기만 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 알려주시시 않으셨고,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초월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가 더욱 더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가지는 지식이라는 것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한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배우게 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하나님의 초월성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불가이해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약간이라도 알려주신 것들을 모아서 살펴볼 때에,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도록 여러 가지 이름들을 (엘로힘, 여호와, 아돈, 엘, 엘 샤다이 등) 가르쳐주시고, 여러 가지 속성들, 이미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임재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를 가지신 분”이시다 (출 3:14).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그 어떤 존재로부터라도 완전한 독립성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충족하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가르쳐주셨는데, 이 용어는 하나님의 단순성라고 본다. 하나님 유일한 본성은 하나뿐이라는 유일성을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상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근거하여 초대교회 시대에서는 정통 삼위일체론은 다음과 같은 기본 확신들을 세워놓았다.

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세 위격이시다.
셋째, 세 위격은 각각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넷째, 각 위격은 서로 구별된다.
다섯 째, 세 위격은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서 영원히 서로 관련되어 있다.


최근 한국교회가 논쟁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어떻게 삼위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한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사역하시느냐에 대한 질문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저 몇 줄로 된 설명을 읽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우선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론의 이해를 위해서는 가장 성경적으로 탁월한 모범적인 해설이 있는데, 주후 451년 칼세돈 공의회에서 채택된 용어이다. 즉,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distincito sed non separatio)고 선언되었다. 한분 예수님 안에 어떻게 두 성품이 혼란없이 통일을 이루는 것인가에 대해서 내린 결정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구별은 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는 해설은 성경을 떠나서 철학적인 회의론에 빠진다면 파악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들 사이에서 서로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계시를 떠나면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은 알려질 수 없는 존재, 신비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하나됨과 세 위격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용어를 특별하게 채택하였다. 주후 325년 니케야 신조를 작성하면서,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본질 (헬라어로 ‘호모 우시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파문하였다. 성부와 성자의 신적 통일성을 표현하는 단어가 필요했기에 “본질” (우시아)라는 단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세 위격적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위격 (person)이라는 용어는 전체로서의 삼위일체와 구별되어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같은 상황에 있다는 표식이다. 삼중적 존재로 삼위일체론의 이해에서, 각 위격들과 관계성에서 중요한 것은 인격적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안에 있는 실제 복합성을 가리키고, 그 본성은 실제 구분들을 수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통일성 안에 복합성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정확한 본질들을 다 알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본체와 위격 사이의 정확한 구분이나 상호작용에 대해서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논리적인 추론이나 유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것도 모두 조심해야하고, 극히 일부분의 이해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한글로 번역을 할 때에, 삼위일체 세 위격들 사이에 존재가 “구분된다”고 하거나 “구별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두 단어 모두 다 사용해서 존 프레임 교수의 「신론」 (2014년 출간)을 번역했다. 물론, 이들 용어들의 특징은 삼중적 삼위일체의 존재에 대해서 각 위격들 사이에 구별되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삼위일체 세 위격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옳으냐 혹은 “구별”하는 것이 옳으냐를 놓고서 단어만을 가지고 따지는 것은 바람직한 삼위일체론 논쟁이 될 수 없다. 훨씬 더 조심해야할 용어가 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분리” (separation)되어 존재하신다는 주장은 잘못된 표현이다. 심각하게 말하면, 이단적인 사상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영어로 “distinction”(구별, 식별, 판별, 차별) 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구분”혹은 “구별”로 번역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어떤 단어를 채택했느냐에 대해서 사용한 용어 한 단어만을 놓고서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확대시키거나, 감정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론적 “구별”이라고 표현하면 정통 삼위일체론자가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상호 “구분”되는 인격들을 가진다고 하면 무조건 삼신론자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전후 문맥에서 어떤 개념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적 관계를 풀이하는지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의지한 주님은 분명한 삼위일체 구별이 없이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하나 안에 계시는 아버지이시요 아들이시며 또한 성령이시다. 세 위격들은 모두가 창조 안에서, 창조를 위해, 하나님의 모든 사역들과 상호 관련이 있다.

성삼위 되신 하나님의 세 위격은 서로 구별되지만, 항상 상호 임재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그리고 성자는 성부 하나님 안에, 성부와 성자는 또한 성령 안에 임재하면서 상호 교류하고, 상호 영광을 돌린다.삼위일체 각 위격들의 상호 내주하심은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서는 성도들 사이의 연합과 비교하였다. 삼위 위격들 사이의 상호내주가 성도들 사이의 연합과 동일하다기 보다는 유비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완벽하고 정확하게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