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측과 사료 보관 숫자 달라 향후 논란 예고

▲ 경희대 혜정박물관이 학교측과 김혜정 관장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유체동산 점유 이전 및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을 둘러싼 학교측과 김혜정 관장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원지방법원이 김혜정 관장이 제기한 ‘유체동산 점유 이전 및 처분금지 가처분’(2015카단202422) 신청을 지난 9월 23일 받아들임에 따라 일단은 소중한 국보급 유물들이 안타깝게 유실되는 불상사는 막았다.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채무자(학교법인 경희학원)는 별지 목록 기재 물건에 대한 점유를 풀고, 이를 채권자(김혜정 관장)가 위임하는 집행관에게 인도하여야 한다”면서, “집행관은 현상을 변경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여 채무자에게 사용을 허가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채무자는 위 물건에 관하여 양도, 질권설정, 그 밖의 처분을 하거나 그 점유를 타인에게 이전하거나 또는 점유명의를 변경하여서는 아니된다”면서,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 법원 집행관 고시문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따라 7일 오전 10시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국보급 사료들의 관리상황을 점검하고, 학교측이 사료들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집행관들이 혜정박물관에 당도했다.
이날 집행된 사료 목록은 매우 중요한 국보급들만 우선 분류한 것으로 기증분 2039점과 기탁분 2744점 등 5000여점에 달한다. 김 관장측은 추후 더 많은 목록을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집행은 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수장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각의 작품들이 벽면에 겹쳐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두 들어내야 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집행관들도 소중한 국보급 사료들이 훼손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집행을 진행해 어려움이 따랐다.

이 과정에서 김 관장은 고가의 개인 소장 작품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이중섭씨의 ‘황소’ 그림(시가 30억원 추정)을 가져가려 했지만, 학교 관계자들이 적어도 3주전에는 고지를 해야 한다고 맞서 향후 논란을 예고하기도 했다.

김 관장이 이처럼 ‘유체동산 점유 이전 및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낸 데에는 소중한 국보급 사료들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학교측의 관리가 적절치 않아 훼손되는 유물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다.

이에 김 관장은 “유물들이 잘 보존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학예사가 필요하지만, 학예사의 지원이 턱없이 모자랐다”며, “해마다 박물관 예산이 줄어들어 자비로 충당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고, 급기야 출입마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물들에 대한 관리상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혜정박물관 연도별 박물관 예산 추이표’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2년에 3억4000만원의 예산을 요청했으나 2억4000만원이 반영됐고, 2014년에는 5200만원으로 급감했다. 이러한 수치는 올해에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김 관장은 그동안 외부지원과 후원자 발굴을 통해 박물관 운영을 이어왔으며, 2011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3억5649만6000원의 후원을 받았고, 부족분은 자비를 출연해 충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법원의 가처분 판결에 따라 집행관들이 경희대 혜정박물관 수장고를 둘러보고 있다.
아울러 학교측에 8만여 점의 사료를 기증하고 17만여점의 개인사료를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김 관장측과 모든 사료의 2699점에 불과하다는 학교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향후 또다른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앞서 유물을 담당했던 학교측의 한 관계자가 “기증한 자료는 11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뿐 아니라 지도첩, 관련 사료 및 문헌까지 망라하고 있었다”면서 “당시 정리자료가 1만9508건이고 미정리 자료가 6만 건에 이른다”고 밝힌바 있어 이후 달라진 주장에 대한 양측의 엇갈린 주장이 공방전을 펼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김 관장측은 학교측을 상대로 피보전권리를 행사할 방침으로, 기증분에 대한 ‘소유물반환청구권’ 소송과 기탁분에 대한 ‘증여계약 해제를 원인으로 한 원상회복청구권’ 소송을 낼 계획이다.

이는 학교측이 ‘혜정 김희숙 선생 기증에 대한 예우’ 문서를 통해 약속한 △경희대학교 종신 석좌교수로 초빙하여 그에 합당한 예우를 갖출 것 △경희대학교 수원 캠퍼스 내에 가칭 혜정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신청인이 기증한 사료를 분류, 정리, 연구하는 중추기관으로 삼고 그에 필요한 인적 물적 지원을 할 것 △혜정문화연구소에서 사료를 분류 정리한 후 그 내용과 규모에 적합한 박물관을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 내에 설립할 것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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