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가을이면 개 교회 또는 교단, 중 대형 교회마다 아니면 연합단체들은 각기 집회를 열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게제 한다.

기독교 계통 각종 신문 각종 광고란을 보면 무슨 집회가 그리 많은지 좋게 보면 한국교회 활동적인 모습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집회 종류가 다양하다고 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독교 연합 및 특별 집회가 천편일률적이다. 저마다 집회의 특성을 알리려고 애쓴 흔적들을 나타내지만 강사들의 이력 면면을 나열해 자신들의 집회가 다른 집회보다 강사진 실력도 더 있고 은혜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음을 광고한다. 또한 광고란의 사진으로 집회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얼굴 마담 격인 부흥회 단골 강사나 대형 교회 원로들 얼굴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어떤 부흥사들은 개인 광고란을 통해 지난 몇 년 전 부흥회 일정과 올해 부흥회 집회를 인도한 실적을 지면 가득 채운 체 광고로 자신의 부흥회 실적을 광고한다. 광고의 이유는 나는 이렇게 많이 부흥회를 인도하였으니 나를 부르라는 자신을 부흥회 전문 강사 매물로 홍보하여 많이 불러 줄 것을 은근히 바라는 형태다. 그런데 일 년 열두 달 매주 빠짐없이 부흥회를 다니면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의 일은 언제 하는가? 시무교회 교인들은 참 너그럽기도 하지 사례비는 본 교회에서 수령하는데도 또 52주간 집회에서 고액의 사례비 받는 것도 의문이다.

부흥회는 국내 집회와 국외 몇 곳에서 참여하는 국제 연합집회의 성격을 가진 집회도 있다. 주제는 하나 같이 갱신, 성장, 혁신, 성령 충만, 교회부흥, 성도들의 개인 신앙 배가 등등이다. 집회를 한번 여는데 필요한 경비는 작은 돈이 아니다. 성도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고 가정 경제를 좀 줄여서 집회를 위해 헌금한다. 집회들은 이렇게 모인 헌금으로 집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출한다. 비용의 지출 규모는 역시 강사들의 사례비와 접대비 그리고 참여자들의 숙식비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인 부흥을 이루어 초대형 교회가 수 십 개가 있는데 또 무슨 성장이며 부흥을 원하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성장한 교회로서 세계 도처의 미 자립된 교회들에게 장자 교회로서 책임을 감당 할 때가 아닌가? 또한 초대형 부흥 집회만 고집하고 거기에서 수입된 헌금을 그 집회에 만 소모하는 집회는 이제 그만 하면 어떤가? 어떻게 보면 강사들은 말씀을 팔고 성도들은 헌금으로 말씀을 사는 형태는 그만 하였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집회 성공의 잣대가 바로 많은 수의 신도 참여와 거두어들인 헌금의 액수에 두고 있다면 이는 세속적인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모든 집회가 자신들의 집회는 다르고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하나 모든 집회의 강사가 그 얼굴에 그 얼굴이며 집회의 성격 또한 초록은 동색이다.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낼 부류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매년 봄, 가을 또는 방학 기간이 되면 어김없이 부흥회꾼들이 모여 집회를 계획한다. 한번 집회에 수익창출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이제는 교역자를 위한 집회나 성도들을 위한 집회를 여는 대도 고가 상품을 경품으로 내 걸어 신자들을 유인하는 집회도 있음이 매우 안타깝고 세속적임이 걱정스럽다. 그리고 집회를 공개적으로 열었으면 집회에 수입된 헌금을 공개적으로 대차대조표를 신문에 공고를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초 교파적이나 연합 집회 그리고 수양관이나 기도원 같은데서 치르는 초교파 집회의 수입 지출 내역을 한국 교회와 사회에 공개한 일이 전무 하다.

기독교 연합단체는 집회 초청대상을 초교파 적이기에 성도들은 집회에 참여하여 시간시간 헌금을 한다. 집회를 기획한 운영진 몇몇이 모여 결산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아무도 집회에 들어 온 헌금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쓰여 졌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는 모든 집회의 내용이 교회와 사회에 정직하게 공표 되도록 하여 하나님께 헌금한 거룩한 돈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개인 호주머니에 흘러 들어가거나, 만에 하나 기획하고 종사한 사람들만의 배를 불리는 형태가 되지 않도록 청렴성을 드러내는 깨끗한 교역자 사회와 투명한 집회 관리가 요구된다.

이제는 집회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집단이나 개 교회는 자신들 만의부익부를 위한 부흥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 개척 교회 지원을 위한 집회가 되도록 하면 어떤가? 부자교회는 더 부자 되는 부흥과 성장의 집회 말고, 몇 백 명의 신자 수를 만족하지 못하고 몇 천 명으로 늘리려는 부흥 집회 말고, 멀쩡한 교회를 헐고 다시 초현대식으로 지으려고 건축헌금 모금을 위한 부흥집회 말고, 가난한 자들과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들을 위한 집회, 전도와 선교를 위한 집회로 전환이 아쉽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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