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12월호>는 성탄 절기를 맞아 특집 ‘예수 탄생과 기독교, 갈등과 평화’란 주제로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를 통해 나타난 평화와 갈등, 기독교 출연 이후의 역사애서 기독교가 평화 수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폈다.

기독교가 우리는 평화의 종교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평화를 상징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립의 한가운데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분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달랐던 것.

기독교는 그분의 평화를 확장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평화만을 지향해 온 것이 아니며, 갈등과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경미 교수(이화여대)는 ‘로마의 평화와 민중의 평화’란 제목으로 예수 탄생에 비추어 본 평화의 의미를 살폈다. 그는 마태와 누가가 전하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데가 있으며, 그것은 아기 예수가 탄생은 ‘유대인의 왕’과 헤롯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이루어짐을 말한다. 또한 그는 민중의 평화인 ‘살롬’과 제국 즉 로마의 평화인 ‘팍스 로마나’가 대립하는 가운데, 아기 예수의 평화는 ‘살롬’임을 전한다.
“오늘 우리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 삶에서 경제와 관련된 것들을 줄여가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샬롬’, 아기 예수의 평화는 ‘팍스 이코노미카’의 반대, 즉 상품의 소비와 서비스에 대한 의존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평화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라난다. 희소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팍스 이코노미카’가 아니라 서로 빚을 탕감해주고 이웃이 되게 만드는 ‘샬롬’, 경제성장이 아니라 ‘가난’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아기 예수의 평화에 더 가깝다.”

김주한 교수(한신대)는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였는가?’란 제목으로 기독교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폭력적이고 전쟁을 일삼는 무례한 종교로 오해하기 쉽다.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평화 지향적, 비폭력 무저항 정신을 사람들에게 고취했다고 설명한다.

“현실주의자들은 언제나 ‘현실’을 앞세워 ‘이상’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양편의 경계선 사이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역사적 실례로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기독교평화주의의 역사적 모델을 보여주었던 아나뱁티스트들의 평화에 대한 확신은 분명히 현대 사회에서 평화의 유용성을 일깨워주는 데 도움을 준다. 평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다. 성서의 무저항과 비폭력 정신은 현실세계에서 ‘평화와 정의’의 개념으로 적용될 수 있다.”

최창모 교수(건국대, 중동연구소 소장)는 ‘예루살렘-누가 이 도시를 거룩하다 하는가?’란 제목으로 기독교의 성지라 불리는 ‘예루살렘’을 살폈다. 과거의 예루살렘과 오늘의 예루살렘을 두루 살펴보면서,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의 특징과 그 역사적 배경과 의의에 대해 살폈다.

“얼른 보면 넉넉하지 못한 이 좁은 땅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불모의 작은 언덕에 올라 앉아 3,000년이라는 긴 질고(疾苦)의 세월을 살아 온 예루살렘이 파리처럼 화려하지도, 로마처럼 웅장하지도 않으면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도시인 까닭은 모두가 이 도시에는 ‘영적인 기운(氣運)’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그 영적인 힘이 넘쳐나서 뜨거운 피와 눈물, 전쟁과 증오, 절망과 상실, 고통과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던 도시가 되기도 했다.”
정지석 목사(국경선 평화학교 대표)는 ‘한국 기독교, 평화의 길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한국 기독교의 평화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살피면서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 기독교의 특수한 상황을 평화와 관련해 말했다.

“지금 평화는 한국 기독교 공동체의 존폐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 법정의 판결에 의존하는 모습은 한국 기독교의 평화적 갈등 해결 능력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중략)한국 기독교는 스스로 평화롭지 않고, 스스로 자기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집단, 사회에 염려를 끼치는 집단이 되었으니 어떻게 평화적 역할을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밖에도 팔레스타인에서 온 사연들을 듣는다. 하닌 아부사다, 디알라 아부줄로프, 야스마인 리쉬마위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팔레스타인의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와서 보라(Come & See)’ 등은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보내온 세 편의 글은 분쟁의 땅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글쓴이들은 팔레스타인 동예루살렘에 있는 평화 NGO 자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청소년들이다. 편지를 통해 그들의 눈에 나타난 오늘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책마당〉에서는 이원석 문화평로가가 레베카 드영의 <허영>을 신수일 목사(포항대송교회)가 정재영의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손종수 시인이 이호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를 한희철 목사(성지감리교회)가 홍순관의 <나는 내 숨을 쉰다>를 각각 서평했다.

이외에도 <교회와 목회>에서는 문성모 교수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관한 이야기”와 전병호 목사의 ‘곡시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등의 글이 실려있다. 또한 영화를 통해 해석한 김호경 교수(서울장신대)의 성서로 영화보기, 스코틀랜드 신학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퍼거슨 교수의 대담 등 풍성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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