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핏줄 사이사이 에워싸던 살찬 바람
끝끝내 울음 울다 터져 버린 얇은 혈관
새벽 밤
끝에 매달려
사위어 간 하현 달

아물아물 수줍은 손 청사초롱 걸고서
말갛게 비워 둔 심방心房, 심실心室
그 안에
너 피어났다
하얗게, 새하얗게

▲ 정 재 영 장로
시란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각을 통해 발화하여야 한다. 새롭다는 말은 창조적 상상력을 말한다. 목련의 모습을 차가운 바람에 의해 삭아진 하현달이 남기고간 흔적이라는 것이다.

첫 연의 사라짐의 의미와 2연의 남기고 간 흔적의 대비를 통해 서로 상반된 이미지는 대상을 선명히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는 배색 처리한 그림과 같다. 곧 소멸이 주는 동시성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선명한 탄생을 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대상을 그리는 세밀함에서 그 특징을 찾아 살펴야 한다. 피부에서 작용하는 차가움을 실핏줄이 감각하는 촉각적인 형상화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극세필화처럼 목련의 이미지를 살리려 함이다.
2연의 시각적 이미지의 동원도 마찬가지다. 청사초롱으로 태어나는 순백을 통해 1연의 혈관이 터져 출혈로 혈액이 비어버린 심장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형물로 대치하여 조성해놓고 있다. 앞서 말한 창조적 상상이란 현실적인 과학적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설명을 위한 일반적인 소통의 지시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는 과학적 현실과 모순되는 언어를 사용하여 진실을 소통하려는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

이 작품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형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음률의 청각적 특징인 외재율과 함께, 자유시에서 추구하는 외연을 통한 긴장이 만들어 주는 미학적 탄성에 의해서 생성되는 내재율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은 창조적 이미지의 동원과 동시에 탁월한 음악성의 언어유용에서 기인한다. 읽는 그 자체가 노래가 된다는 의미에서 원래 시가(詩歌)라는 전통적인 해석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해석하는 자유시와 귀로 듣고 감각하는 정형시의 양면성에서 이 작품의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