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 안방에 밤이면 찾아왔던
그 이름은 땅강아지였다
까마득히 잊고 무디어진
오랜 세월의 내 공간에 찾아온 거야
처서가 지난 창틈으로
먼 길을 왔을 것인데
뜬금없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만남을 나누고 나누었는데
저도 가만히 있어주었다
떠날 때가 됐나 싶어
살며시 창을 열고
나무숲 땅으로 보내주었다
서운한 밤이었지만 우리는
떠나고 보낸 것이 그리움인 것을
진즉 알고 있었던 거야
한밤의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 정 재 영 장로
시와 산문의 구별은 은유의 존재여부에 달려 있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마치 짧은 글이라는 의미의 장편(掌篇)인 산문 즉 수필의 일부분이거나 소설의 한 장면이라고 이해가 될 수 있다. 땅강아지와 단순한 만남과 헤어진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산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인 은유를 이중의 포장으로 담아 두고 있음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면 ‘입을 열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주었다’, ‘말하지 않았다’ 등, 침묵의 언어를 통해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는 면에서 시 장르의 특성과 연결된 것을 알게 된다. 즉 이 시는 언어자체가 아닌 사건 속에 담긴 비유 속에 함축과 암시의 비의를 숨겨두었다는 의미다.

땅강아지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곤충이지만 ‘까마득히 잊고 무디어진’ 말을 보면 어릴 때 장난감처럼 땅강아지를 가지고 놀이를 한 기억이 있었다. 그런 땅강아지가 ‘뜬금없이’ 찾아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는 비문과 같은 진술을 보면, 예상치 못한 어떤 과거의 사건이 떠올라 속 심정을 말하지 못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헤어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일로 그리움을 재생산하는 현실적 상황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전에 그리움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그리움으로 이행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탓에 침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시창작 특성 중 중요한 점 하나는 대상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다. 소위 지적통제를 통한 새로움의 인식이다. 그 방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한다. 그러나 전체가 포괄적 진술은 하나의 통일성을 가진 은유인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그 은유를 해석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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