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 박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민족은 계와 품앗이라는 공동과 공유의 삶을 살아온 민족이라고 했다. 이 정신을 다시 되살려서 책임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면 새 시대를 만들 수 있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 될까?

요즘 자본주의의 대표적 두 모델을 시장 주도의 미국식 자본주의와 국가 주도의 중국식 자본주의로 대별하는 경우가 많다. 월드뱅크 중국 디렉터를 역임한 바 있고 현재 카네기 재단 선임연구원인 황 유콘(Yukon Huang) 박사는 작년 말 중앙데일리 기고를 통해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동일한 도전 앞에 놓여있다고 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준다는 것에서 - 물론 기회의 결과가 다를 수는 있지만 - 정당성을 끌어낸다.

그런가하면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계의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끌어내는 근거는 실제가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 체제야말로 기회는 물론이고 결과도 보다 평등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식은 혁신을 끌어내지만 개인의 권리에 우선권을 주어서 전체의 장기적 필요를 충족하기 어렵게 하는가하면, 중국식은 전체를 위한 해결책을 잘 내어놓고 끌어가려고 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데에서 큰 비용을 치른다. 이런 방식은 시장과 정부의 두 축을 가지고 하는 비교다.

시장에 맡겨서 안 되는 공해유발 문제나 독점적 지위에 따른 불공정한 행위의 규제 등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결국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 정도가 어느 정도냐를 놓고 하는 구분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니까.

황 박사가 지적하는 양국이 직면한 도전은 우리도 살펴볼 만하다. 첫째, 양국 다 소득불균형의 완화문제가 중요하다. 중국의 국가운영 은행이나 기업이 공산당과 커넥션을 통해 우세함으로써 불균형과 부패를 촉진한다고 한다. 서구의 연줄 자본주의도 폐해는 크다. 양쪽 모형에서 공히 기업가정신의 아웃사이더보다는 연줄로 얽힌 내부자가 살아남기 편한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양국에서 공히 글로벌화로 인해 불평등이 커진다고 본다. 국제적인 수요가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수익도 많아지지만 평범한 기술 가진 사람은 정체된다. 황 박사에 따르면 이런 사정은 미국 중산층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중국의 경우 해안의 무역이 활발한 지역과 내륙지역의 차이를 크게 벌려놓는다고 한다.

둘째, 규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양국에서 관건이다. 중국의 국가운영 서비스 산업은 제대로 규제가 안 되어 문제라고 한다. 중국정부가 운영하는 고속전철만 봐도 규제 책임과 운영 책임을 분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 황박사의 지적이다. 미국식의 민간 서비스 공급자 쪽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면 질이 높아지지도 않으면서 값만 오르는 문제를 드러낸다. 셋째, 양국 다 혁신을 지원하면서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문제에 골몰하게 된다. 혁신을 촉진하는 데에 시장주도 자본주의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황 박사가 보기에는 미국의 경우 국가가 이를 충분히 지원하는 역할을 해 내지 못해서 역동성을 잃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 다양한 산업이 필요하지만 국가는 이런 일을 촉발시키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결국 요지는 양국 모두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과 보이는 정부의 손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은 국가의 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법치, 미국은 시장의 역할에 대한 효과적인 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황박사의 결론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부가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필요한 일만 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시켜야 하겠지만, 시장이 왜곡되거나 실패하는 영역에 대해서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오래 전부터 역설해온 서울대 명예교수 변형윤 교수는 재벌의 윤리에 대한 글에서 재벌의 긍정적인 역할과 부정적 역할을 정리하고 있다. 저축 및 투자의 주도적 담당,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의 실현, 그리고 혁신의 담당이 긍정적 역할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상호 결합되었을 때라야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국민복지로 이어지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재벌의 대기업으로서의 부정적 역할을 줄여나가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형성은 불가피하더라도 의도적 독과점 행위의 폐해와 무분별한 투자, 투기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또한 공해규제에 대해서도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 그에 앞서 산업공해와 산업재해에 대해 대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써서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가.

이번 정부에서 어떤 새로운 모델의 자본주의가 나올지 기대가 되지만, 계와 품앗이의 서민 정신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제도와 정책으로 잘 뿌리내리게 하는 길밖엔 없다.
강릉원주대 치대 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