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본 적 없는 미소년이
여린 새순 같은 무릎을 낮추고
허릴 굽혀 발을 씻긴다
얼굴 가득 살얼음이
고산의 슬픈 흔적처럼 거무스레 스며 있다
소년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수줍음이 얼굴 가득 일렁인다
찰방찰방 물과 물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와 잠시
굳어버리곤 하는 공기를 희석 시킬 뿐이다
천장 가득 흐릿한 조명이 지리한 듯 눈을 껌뻑인다
불빛 아래 물속,
꼼지락 거리는 손놀림이
등 붉은 물고기 꼬리지느러미를 닮았다고 문득, 생각한다
바다의 어류를 본적 없는 소년은
어디서 물고기의 몸놀림을 대대로 답습한 것일까
먼 옛날 유대 땅,
무릎 굽혀 발을 씻긴 눈 깊은 한 사내를 떠올린다
생각 없이 누운 나와의 괴리는 얼마쯤일까

너무 멀리 밀려와 버린,
너무 많이 잊어버리고 살아 온 내가
고산의 살얼음처럼 뒤척인 밤이었다

* 세족: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섬김의 자세를 일컫는다.

▲ 정 재 영 장로
앞 연은 세족식을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다. 마지막인 2연은 그 사건을 자아에 연결시켜 해석해내고 있다. 시란 원래 대상을 자아와 연결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세족식의 풍경과 자아의 의식 세계가 어떤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이함은 무엇보다도 제목을 제외하고는 천상적인 이미지인 종교적 언어를 모두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이 중요한 이론인 소위 ‘정서로부터 도피’라는 엘리엇의 말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왜냐면 그렇지 못하면 시가 대부분 설명이나 설교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여린 새순’, ‘등 붉은 물고기 꼬리지느러미’ 등의 비유도 그런 연유로 사용한 수사법이다. ‘고산의 슬픈 흔적’이란 시어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설산(雪山)의 순수와 고독의 이미지를 연상한다면 인간의 연약한 지고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는 있다.

물소리가 굳어버린 공기를 희석시킨다는 말에서 역설적 진리인 연약한 액체의 강인함을 암시하고 있다. 곧 세족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시의 생명인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연은 행과 달리 중간에 침묵의 묘미를 담고 있다. 그 목적은 세족의 객관성과 자아의식의 주관성을 융합해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침묵이 언어보다 더 강열한 상상을 유추한다.

세족식에서 자기의 삶의 발을 연상해 보고 있다. 멀리 왔다는 말이나 잊어버리고 살아 온 화자의 의식은 그 발에 붙은 삶의 오염을 에둘러 추론하라고 함축해 놓고 있다. 그래서 뒤척이는 밤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성해 보는 냉철한 신앙적 자세를 알게 해준다. 화자의 존재인식이 고산의 살얼음인 담론임을 알게 해준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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