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에 대한 시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가을 자체를 영탄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라는 언어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역설적인 기법의 작품이다.
가을이란 풍요로운 절기이며 동시에 존재의식에 대한 궁핍을 가장 많이 가지게 하는 계절이다. 가을의 기도는 존재 탐색의 자세다. 존재 원인에 대한 신과의 대화이며,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살핌과 다짐이다.
기도란 우주의 제일 원인인 존재인 신 앞에서의 솔직한 대화다. 그렇기 때문에 겸허한 자세 즉 인간 본질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기도란 모국어로 상징된 원초적인 대화인 것이다.
인간은 낙엽과 같다. 자연을 통한 깨달음, 그것은 신의 일반적 계시를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다. 낙엽은 열매를 위한 과정이다. 그런 인식은 자신의 죽음을 통한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이룸으로 비옥한 삶의 완성을 이루고자 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실천을 위한 동기를 가져다준다.
인간은 신 앞에서는 혼자 서 있는 존재다.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둘만의 관계임을 알게 해준다. 혼자일 때는 가을처럼 고독하나 신 앞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존재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의 모습을 까마귀로 치환하고 있다. 백합이라는 순백과 대치시켜 인간 본질적인 존재의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도라는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인간은 낙엽마저 떨어진 가지 위에 있는 까마귀의 모습임을 깨닫는 것이다. 실존의 관념을 언어로 시각화 시키고 있다.
기도란 굽이치는 바다를 건너기 위한 처절한 자기 고통의 시간들임을 알게 한다. 그것은 단순한 생각의 시간들이 아닌, 인간의 삶을 살피는 것이다. 바다의 파도와 백합의 골짜기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보여줌으로 기독인 사람이 푸른 초장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치는 양면성의 실존적 존재라는 인간론을 시어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표현양식은 떨어지는 낙엽과 열매의 생성, 백합과 까마귀의 상반성의 동원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는 융합시학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상반성의 융합에서 컨시트(기상)를 구축하는 통합적 감수성의 선명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