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창밖 가득히
햇살이 내립니다

어둠이
깊은 슬픔으로 고였던 자리마다
플라타너스 나뭇잎 흔들어
바람이 털어내고

말씀으로
해말갛게 씻겨진
내 몸 세포가
풀꽃으로 태어나는
아침은
지상에 흐르는
물소리 다 쏟아내려
깨끗하게 씻은
푸르른 배추 속 같습니다

뱀 허물로 벗겨진
참혹한 죄악의 시간
흔적조차 없습니다

예수, 피 흘린 손으로 덮어

세상 가득히
햇살 타고
사랑이 내립니다

▲ 정 재 영 장로
메타포(metaphor)가 생명인 시는 철저히 속내(원관념)를 숨기고 다른 모습(보조관념)으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즉 변용이라는 용어처럼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노출 시킨 언어를 사용하면 시가 아닌 산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산문이 시보다 문학성 수준이 낮다는 말은 아니다. 산문은 산문대로 목적이 있는 글이다. 산문은 평설이나 해설처럼 설명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하여튼 시란 숨긴 말 즉 은폐된 속뜻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은유라고 한다. 시라는 장르인 기독시도 마찬가지다. 천상적 이미지를 지상적 이미지로 이동시킬 때 시의 위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현대시론의 중요한 부분이다.

예시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품 속에 나오는 몇 단어를 연결해보면 다음과 같다. 햇살이 내린 아침은 어둠이 물러가듯, 화자의 몸도 물로 씻은 배추 속처럼 말씀으로 씻겨 깨끗하다. 어둠의 시간이 다 지나간 새로운 기운을 받은 아침 풀꽃처럼 예수의 피로 씻겨 역시 깨끗한 마음에 사랑이 햇살처럼 흐른다는 것이다. 아침 햇살에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감사하는 글이다.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내용의 글이 시라라고 불리는 언어예술이 되는 것은 원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를 위한 사물의 동원 위에서 근거한 미학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사죄의 심령의 형태를 잘 씻긴 배추 속으로 보여주는 언어운용에 있다. 깨끗이 씻은 배추 속의 신선함을 영적인 속사람의 사죄의 모습으로, 아침 햇살의 신선한 감각이 세상으로 퍼지는 사랑의 이미지로 만든 형상화 작업이 이 시의 생명이다. 이런 비유를 위해 가장 적절하게 동원된 말을 엘리엇이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이 작품은 배추를 씻은 물을 주님의 피로 대치시키고, 새로워진 심령을 아침의 해말간 풀꽃으로 바꾸어 놓은 시인의 의도적인 언어시도가 현대시 창작론에 아주 적절함을 보여 줌으로 미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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