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올해 사순절은 2월 10일부터 3월 27일까지 7번의 주일을 뺀 40일 동안이다. 사순절, 특히 고난주간에는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독교의 사순절은 성탄절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의 사역을 하는 과정을 성도가 스스로 겸허히 그 고난에 동참하는 시기로, 경건과 절제의 기간으로 보내는 중요한 절기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올해 사순절을 어떠한 자세로 보내야 할까. 경건훈련과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손길, 말씀 묵상과 경건의 기도, 절제와 금식의 시간, 봉사와 구제, 전도의 기회로 삼는 자세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경건한 삶을 실천하라

사순절 지키기의 핵심은 경건훈련에 있다. 이 기간 중에는 오락을 멀리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등 경건한 삶을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사순절을 제대로 지키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순절 기간임에도 오히려 세속적 즐거움에 빠져 경건함을 잃어버린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 귀중하고, 은혜로운 기회를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순절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먼저 교계 지도자들이 실수와 갈등, 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반성하고, 겸허한 성찰과 함께 그리스도가 걸어간 삶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을 종식하고, 교회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사회의 갈등극복과 경제난 및 환경재난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교회가 건넬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먼저 경건함을 되찾아야 한다.

오직 교회가 한국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소망과 신뢰를 안겨줄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사순절을 계기로 이 땅에 소외받은 이웃들을 위한 섬김과 나눔 사역을 새롭게 정립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동안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만 치우쳤다면, 진정으로 소외된 이웃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소외된 이웃들의 고통 받는 삶을 체험하고, 그들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보여주기식 나눔 실천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우러나는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말씀 묵상과 경건의 기도를 해야 한다. 가정에서 자녀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훗날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사순절 기간에 경건한 삶을 지켜나갈 것이다. 또한 그동안 소홀했던 성경읽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이때 신약을 정독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스스로 사순절 기간 동안 성경읽기를 위한 계획을 짜서 매일, 매시간 성경읽기를 추천한다. 더불어 교회마다 사순절 기간에는 특별새벽기도를 진행하는 데 성도들 스스로 목표를 두고 새벽기도에 참석해야 한다. 이 새벽기도를 통해 느슨해진 신앙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고, 닫혔던 영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사순절 기간에는 가정에서도 절제와 금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왕이면 이 기간 중에는 화려한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오락이나 식도락 같은 세상적 즐거움에 미혹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가능하면 단 한끼라도 금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몸소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십자가 지고 사랑 실천해야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성도 개개인이 세상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십자가 신앙 회복, 경건의 생활화, 나눔 운동의 확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 공의 정착운동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욕망의 수레바퀴에 갇혀 살던 몸과 마음에서 벗어나 신앙의 본질과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금식 등 자기절제와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되새기는 신앙성숙의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기간이자, 죽음을 경험하는 기간으로 삼아 영적 성장을 이루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개인적 신앙성찰의 시간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삶 속에서 구제와 나눔을 통한 사랑실천의 기간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사순절의 마지막 일주일인 고난주간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처한 삶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고통을 체험하며, 많은 교회들은 특별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기념행사를 열고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게 된다.

대다수 목회자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될 때 진정한 부활신앙을 경험할 수 있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는 말씀처럼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우리가 생활 속에 만나는 고난이 부활의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러한 고난주간의 의미를 제대로 묵상하지 않고, 경건과 절제, 나눔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의례적인 행사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목회자와 교인들은 고난주간 동안 입으로만 외칠 뿐, 경건과 절제, 나눔, 이웃사랑 실천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데는 인색하다.

특히 예수의 부활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어 고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깊이 묵상하지 못하고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마땅히 기념해야 할 중차대한 사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부활 사건 이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인들은 사순절 특히 고난주간에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 은혜와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우리들의 구주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이벤트 위주의 부활행사 우려

그러나 매년 부활절마다 한국교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행사들은 이와 같은 신실한 교인들의 거룩한 자세보다는 어딘가 보이기 위한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맘모스 부활절 예배를 준비하는 곳에서는 불미스러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행사의 요직이 행사를 위한 헌금액수로 결정 된다느니, 보다 많은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 설교는 큰 교회 누가 해야 한다는 식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가 아닌 사람 중심의 예배, 자신을 뽐내고 높이는 예배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성대한 부활절 예배’로 포장돼 한국교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맘모스 부활절 예배가 크고 많은 것만을 추구하는 물량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교회의 저급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교계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왜 부활절 연합예배를 대대적으로 드려야 하느냐는 것이다”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크고 넓은 장소에 구름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 더 영광스런 것이냐는 반문이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다종교사회인 한국사회의 특성으로 보아 범교단적 행사를 치러 세(?)를 과시하는 것이 복음전도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복음전도는 복음전도고 거룩한 부활절예배는 부활절예배대로 따로 경건하게 드리기 위해 각 교회에서 거룩하게 드리는 것이 더욱 하나님께 영광된 예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크고 거창한 맘모스 예배를 지향하다 보니 인간적인 계략이 끼어들게 되고 사람의 냄새가 풍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룩한 예배의 본질은 사라지고 변질된 인간의 술수가 양의 가죽을 쓰고 전면에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표리부동한 회칠한 무덤 같은 예배를 즐겨 받으실지 의문이라는 것이 일각의 목회자와 교인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뜻 깊은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모두가 보다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맘모스 예배를 지양하고 보다 내실을 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해 내야한다는 것이다.

행사는 일회적으로 끝나고 말지만, 비록 작은 일이지만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한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사랑 실천에 역점 두라

사실 십자가의 고난, 부활절의 의미를 간략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다. 그것을 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이다. 기독교의 생명이 사랑이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행사를 ‘사랑의 실천’에 두고 진행한다면 분명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교회성장과 복음전도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수 없이 많다. 사랑이란 곧 용서하고 주는 것일 진데,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을 통해 이웃을 용서하고 줄 수만 있다면 맘모스 대형 예배보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리라 사료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성도들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추운 겨울 거리 곳곳에 누워 떨고 있는 노숙자가 있고, 불의에 항거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양심수가 있고, 병든 몸을 가눌 수 없어 골방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환자가 있다.

그 뿐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병든 몸을 이끌고, 하루에 몇 천원을 벌기위해 넝마주이를 하는 불쌍한 노인들도 있고, 힘 있고 가진 자들 중심으로 짜여진 잘못된 사회 제도와 구조에 짓밟힌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이처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인 예수님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교회는 저들의 신음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지금도 맘모스 연합예배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독교의 참사랑은 교회강단의 미사여구가 아니고 값싼 동정이나 몇 마디 위로의 빈말이 아니다. 말없이 행하는 자기희생이다. 나 쓸 것 다 쓰고 남아도는 것으로 인심을 쓰고 생색을 내며 자기만족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은 위선이다. 선행을 불쌍한 이웃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자기만족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다면 이 또한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

배반자와 같은 우리들을 사랑하여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금년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 기간 동안 우리들의 손길을 통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뻗어 가야 한다.

경건과 절제, 인내를 통해 목회자와 교인들이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섬김과 헌신, 나눔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념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기간, 특히 고난주간에는 묵상과 기도, 경건과 절제와 인내, 이웃 사랑과 나눔, 섬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의미 있는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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