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자기자랑에 입씨름을 벌였단다. 먼저 가위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나는 어떤 천이라도 내 이빨로 끊어 낼 수 있거든! 조금도 흠을 내지 않고서 말이야!" 다음에는 톱이 나섰다. "내 이빨은 거목이라도 넘어트릴 수 있고, 굳은 옹이라도 깨끗하게 잘라낼 수 있지." 그러자 혀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빈정거리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아무리 자랑해도 나하고는 게임이 안 된다. 난 말이야, 남의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반으로 갈라낼 수 있거든! 절친 사이에 끼어들어 둘의 우정을 갈라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과 가정만사에 파고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있지. 항상 이빨로 짓씹고 있지만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거든!" 가위와 톱은 함구무언이 되었다는 얘기다. 말의 위력, 혀의 파괴력을 설명하는 웅변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이빨의 위력, 혀의 폭발적인 파괴력에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의 절규를 듣고 있다면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에게 삶의 법칙으로 주신 십계명은 우리들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닐 수 없다. 십계명의 대 강령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본시 십계명을 주신 목적이 단순하게‘하라, 하지 말라.’하여 행위나 행동을 제한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아름다운 관계유지’에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잘 지킴으로 유지되고, 인간관계는 나머지 계명을 지킬 때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5계명부터 차례로 인간사회의 위계질서, 이웃의 생명보존, 가정과 정결한 혼인관계의 유지, 이웃의 소중한 소유(=재산)를 보호해 줄뿐 이웃의 무형재산인 명예를 지켜줌으로 관계를 유지해 나가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특히 제9계명은 두 가지 현장에서 지혜롭게,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우선 법정에서 증인으로 섰을 경우 어떻게 이웃의 명예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증언해야 하고, 개인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내 이웃의 소중한 명예를 지켜주고 체면을 세워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참 말만 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가까운 이웃은 물론이고 어쩌다 만나는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의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다면 거짓을 말하여 그에게 해를 끼치고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9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 사람이 쓴 글에서 지옥, 특별히 말로, 글로 거짓을 말한 사람들만 모아 놓은 옥(獄)에 가보면 아마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글을 읽을 때 내 마음 한 구석에서“거기에 목사도 끼어 넣어!”그런 심사가 머리를 들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속병을 앓았으며, 또 남을 그렇게 아프게 한 일은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부하가 치밀고 부끄럽기 한이 없다. 엉뚱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어린 손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신명나게 들려주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어느새 현장에서는 양치기 소년의 그 일을 거듭 반복하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여의도에서는 필리 버스터 세계 기록을 갱신하였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39명의 야당의원이 등단하여 192시간 동안 계속 발언하여 세운 희한한 기록이다. 12시간 31분! 진기한 기록을 세운 야당 원내 대표(이종걸 의원)의 발언은 앞으로 깨어지기 쉽지 않을 듯싶다. 시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9대 국회의 대미를 장식한 무제한 토론은 합법을 빙자하여 국회를 마비시킨 희대의 사건이고, 그 내용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태반이었다는 평판을 받으며 어두운 막을 내렸다. 합법이냐? 불법이냐? 그것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5:3) 잠10:19절에“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하신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조된 거짓말, 확대 재생산된 유언비어, 그리고 아무근거 없이‘아니면 말고’식으로 뱉어낸 한마디 거짓말로 평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온 이웃의 명예를 휴지조각처럼 시궁창에 쑤셔 박는 그런 사람을 어찌 올바른 인격자라 하겠는가? 적어도 목사라면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동역 자를 무참하게 잡아 죽이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런 거짓말은 할 수 없다. 거짓의 영에게 사로 잡혀 있지 않다면 말이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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