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장마
빗줄기 하염없이
내리꽂히는 밤
건물 외벽 빛이 새어나오는 방충망 사이로
몰려드는 나방들

빛으로 뛰어들다 그대로 고정되어 버린다

무수히 바스라지는
빛의 바늘들!

곤충채집 표본의 한 페이지 같은 시간
빛의 핀으로 박혀 버리는
하루살이에 다름 아닐
생의 가냘픈 떨림이
속절없이 젖어 오른다

▲ 정 재 영 장로
시란 대상을 노래하되 실은 자아의 고백임을 잘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시의 생명은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악하여 자아와 결구하는 심미적 힘에 의해서 생기는 울림에 있다. 즉 읽는 사람과 그 대상이 동일시되는 힘에서 상호 설득력하는 힘이 바로 기상(conceit)이라는 기능이며, 시인의 의도적 작업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장마철인 여름밤에 나방들이 방충망 사이로 비치는 빛에 달려와 붙은 모습이 마치 곤충채집표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화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존재양상도 그와 같은 모습인 것을 감각하면서, 마치 존재란 하루살이와 같다는 자아의식을 토로하고 있다.

첫 연과 둘째 연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그런 재현된 모습을 화자와 연결하여 상상한 존재의 진실을 시각적으로 그려주는 것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 정의 하에서 본다면, 여름밤에 걸린 나방의 모습을 그린 <생의 가냘픈 떨림>의 제목을 가진 삽화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언어 속의 관념이나 정서를 감각화로 만드는 것을 형상화라 한다. 반대로 그림은 형상을 관념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해도 타당하다. 전자를 감각화라 한다면 후자는 관념화라고 정의되는 것이다. 즉 시는 관념을 벗어나는 일이고, 그림은 시각적 작품을 관념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가는 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색으로 관념을 보여주는 것이 그림이고, 시는 언어의 이미지를 들어 관념의 세계를 밝히는 작업인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본다면 설명이라는 언어기능을 버리고 언어를 시각적 모습, 즉 형상화를 시킨 회화의 모습으로 만든 이미지를 동원한 이 작품은 미학적 위치를 스스로 말해주는 좋은 예가 된다. 정서를 그린 그림 속에 존재 탐구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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