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古木)들은
밤이 가장 무서운가 보다
별의 뒷켠에 붙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외로움이
가슴속 깊이 팬 구멍으로
퉁소를 불며 그 긴 밤을 달래는 것이다

지하철 열차에는
고목들만 따로 앉히는 자리가 따로 있다
밀치고 밀리는 고역 속에서
밤새 덮고 자면
외로움보다 더 힘든 무료를 짊어지고
이른 아침부터
갈 곳이 없어도
그냥 가는 것이다

▲ 정 재 영 장로
1연의 고목과 마지막 연인 2연의 이른 아침부터 어디인가를 가는 사람을 연결하여 외로움과 무료를 지닌 군상들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제목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그려주고 있다.
지난밤에 겪은 밤의 외로움을 별의 뒷켠에 있는 얼음장으로 연결해주고 있다. 별은 달과 달리 멀리 있는 상징이 된다. 몇 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 외로움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대상도 그처럼 멀리 있는 존재다. 화자가 감각하는 것은 먼 거리 의식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움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단독자의 인간실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톨이의 고독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실존이다. 왜냐면 ‘가슴속 깊이 팬 구멍’으로 보여주는 정서적 근본 인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단순히 늙어서 생기는 주민등록상의 나이나 신체적 나이가 아닌 철학적 존재론의 인식임을 알게 해준다. 왜냐면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인 ‘퉁소를 불며 그 긴 밤을 달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누구나 텅 빈 마음이라는 것이다. 즉 고독이라는 실존적 존재가 바로 구멍 뚫린 가슴이다. 화자는 그것을 초월내지 극복해내려는 의지를 퉁소를 부는 모습으로 대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간밤의 외로움을 달래려 지하철을 타고 이른 아침부터 아무 곳이나 떠나는 군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목의 자리라고 해서 굳이 노인들로 한정시켜 읽을 필요는 없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외로운 단독자이며 누구나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보다 더 힘든 무료라는 말은 무가치한 존재, 즉 실존인식의 상실을 말하려 함이다. 그런 존재는 어찌 노인만 아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외로운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행의 ‘그냥 가는 것’이 그것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다. 찡하다. 이 찡한 마음이 문학목적론인 순수한 통징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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