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기절해버린
깊은 밤으로
가식 하나 버린 너
 
요동치듯 존재의 커튼 위에
겁에 질린 두 눈
긴 탄생의 아픈 숭어리라
 
환희의 깃발로
새벽에 일어서
순간을 허물어버린다
 
가쁜 숨 멈춘
감성적인 고향에
문 하나 빗장 풀려
가슴 치는 한숨소리
그는 가고 없다.

▲ 정 재 영 장로
제목부터 수상하다. 글자 그대로 친다면 4월의 꽃이 요부(妖婦)라는 것이다. 괄호란 설명의 의미가 있다. 즉 4월의 꽃은 요부와 같다는 설명이다. 부제를 제목 아래의 별도 위치에 두는 통상적인 면에서 같은 위치에 두고 있는 면도 특이하고 남다른 모습이다.

내용도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시란 설명이나 해석보다 감각하는 언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소통의 일차적 언어 기능 안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일단 4월의 꽃을 바닷고기인 숭어를 들어 비유하고 있다. 그것도 빛이 기절한 어둠의 시간에 가식을 버린 순수의 모습이다. 숭어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진술부문은 없지만 화자의 상상이 꽃의 모습을 숭어 이미지로 동원하고 있음이다. 시가 상상의 언어라는 정의 하에 서로 상관관계가 없어도 그만이다. 시인의 시각으로 그리 보는 것이다. 다만 4월의 꽃과 숭어와 요부가 서로 연결되는 면을 같이 상상하여야 하는 점이다. ‘겁에 질린 두 눈’과 ‘긴 탄생의 아픈 모습’이 요부 같은 봄꽃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꽃의 흔들림과 숭어의 요동치는 이미지를 요부라는 이미지를 강제적으로 동원한 감각의 표현이다. 또한 꽃이 요부가 되는 것은 첫 연에 나오는 어둠처럼 새벽의 사라지는 존재, 즉 낙화의 순간을 포착한 잔상의 면에서 무의식의 발로로 본다.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의 ‘그는 가고 없다’는 말이 그것을 보충해주고 있는 점이다.

서로 긴 겨울의 어둠을 벗어난 존재가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이나, 한순간에 피었다 가고 마는 4월의 꽃을 긴 겨울을 지나 순간에 파닥거리다 가는 숭어나, 요부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찰나의 시간성을 연결하여 강조했다고 본다.

시가 암시와 함축이 생명이라면, 소위 쉬클로브스키나 야콥슨 등이 말한 낯설게 만들기라는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인식과 감각을 초월하는 창조적 상상으로 만든 미학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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