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나침반은 항상 북쪽을 가리기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변하여도 나침판은 늘 자신의 방향을 묵묵히 가리키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기위해서는 말과 행동에 대한 제약 사항이라는 것들이 있다. 말에 대해 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며, 행동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이를 두고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것은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인격이라는 잣대이다.

윤리와 도덕, 예절, 인격은 사람이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세운 인간의 질서라고 본다. 사람은 위아래라는 차서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빈부귀천을 떠나 서로 존경하며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있다. 가령 부모와 자식 간에는 넘지 말아야 할선이 있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자식이 침범치 못하는 천륜의 선이다. 이웃과 이웃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예의가 있으며, 남 녀 간에는 윤리와 도덕이 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계율을 적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함을 강조 한다. 지금 사회는 서로 지켜야할 선이 지워져 무분별한 모습을 보게 한다.

세상은 지금 서로 넘지 말아야 할선이 무시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할 윤리와 도덕적인 잣대가 부러지고 훼손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성윤리가 파괴되고, 청소년들은 이성에 대해 호기심을 넘어 성인들의 흉내를 내는 일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또한 부족한 용돈을 확보하기 위해 원조교제는 물론 조직 폭력배들처럼 조직을 운영해 성을 상품화하여 돈을 갈취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하다.

아파트 문화로 이루어진 신도시에는 사방에서 몰려온 입주자들이 공동주택이라는 편리함으로 벽하나 사이에 서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그런데 아파트의 특성 상 웬만한 불편은 서로 이해해야 하지만, 때로는 작은 문제로 인해 이웃 간의 분쟁은 극과 극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서로 왕래가 없어 이웃이면서 누구인지 통성명도 없는 사이다 보니 층간의 소음이 일어날 때 서로 이해하면 될 것을 격한 반응과 급기야 살인으로 까지 비화되는 이웃 간의 관계도 단절된 상태다.

국내에 기독교 인구가 일천만이라고 하면 네 가구 중에 한가구는 크리스챤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속을 들여다보면 교인들은 자신의 교회에 교인을 채우기 위해 주변 작은 교회 교인들을 데려 오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무조건 내 교회만 부흥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대부분 교역자의 가르침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떤 대형 교회에서는 타 교회에서 온 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하였다고 한다. 교회가 교인 도적질을 하니 세상 사람들에게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어떻게 교육하겠는가? 윤리의 실종을 교회가 보여주니 기가 막히다.

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하기 위한 곳인가? 십자가를 높이 단 이유는 죄악 된 길을 버리고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말없이 서 있는 십자가가 밑에서 교회는 재산을 놓고 신, 구파 간에 소유권 싸움을 피터지게 하는 모습을 보게 하고, 전임 후임 간에 알력은 도가 지났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모였다가 시끄럽게 노래하고 강단에서 춤(?)과 희극(?)을 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곧 돌아가는 모습만 보고, 때로는 한 교회아래 위층에 동시에 두 예배드리는 행위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일날만 약간 시끌벅적하다가 조용하고 간혹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만 간간히 보이지만 일주일 내내 적막강산과 같다고 한다. 덩그렇게 크게 지어놓은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얼만데, 비효율적으로 건물을 크게 짓는데 드는 비용 또한 어마어마한데, 그렇게 큰 건물을 텅 비어 놓고 있는 교인들과 목회자를 교회 주변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밤에 붉게 비치는 네온의 십자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잠 못 들게 하는 방해물로 전락했고 속히 불끄기 바라는 생각을 교회는 아는지? 선교라는 이유로 소등을 거부하니 이것 또한 교회와 이웃 간의 불통의 모습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하였는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목회자들은 큰 건물, 연합회의 높은 직책, 높은 학벌과 학위를 선호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짓과 별반 다름이 없다. 허구 헌 날 교회는 비우고 부흥회, 세미나, 총회, 지방 회에 바삐 움직이다보니 설교 준비할 시간이 없다. 그러고도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높이달린 첨탑의 십자가가 흉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각성이 필요한데 잘 될 런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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