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바 울 목사
어린이주일을 맞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 없는 것 같다. 그 어느 주일보다도 뜻 깊은 순간임에도 가슴 한편으로 아쉬움이 크다. 어린이주일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교회 안에서 어린이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양육해야할 주일학교마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는 곧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자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다시 말해 한국교회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모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한국교회 안에서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수치의 교회에 주일학교가 없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나라 전체 교인들 중 어린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주일학교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어, 어린이들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현실 안주에만 목을 매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본질적인 개혁과 갱신에 기대지 않고, “성도들의 헌금이 줄어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 이들은 장차 교회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될 어린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대수롭지 않다. 현재 헌금을 내는 연령층인 장년에게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근시안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해결해줄 유일한 대안이다. 이들만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전진의 계기를 가져다가 준다. 또 썩어빠진 고인 물을 걷어내고, 희망의 깨끗한 물을 가득 채워줄 산소수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처럼 소중한 자원임에도 이들에게 무관심으로 일변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애처롭다.
터놓고 이야기해서 당장 어린이들이 교회 재정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난 후 교회를 이끌어갈 연령층이 과연 누구일까. 바로 ‘나 몰라라’ 무시했던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자라고 성인이 되어 교회의 든든한 기둥으로써 제 역할을 하는 나이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소홀히 한 한국교회에 과연 남아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타종교로 개종을 했거나, 아니면 다른 교회에 나가거나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문을 닫거나, 나이가 많은 성도들만 가득한 교회에 멈춰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도 너무 늦은 후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작금의 근시안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멀리 내다봐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바르게 양육하는데 모든 전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일학교의 대대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처럼 단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의 모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어린이들의 가슴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명령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심어줘야 한다. 더불어 교육형태에 있어서도 성경을 달달달 외우게 하는 형식의 고전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어린이들이 스스로 성경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아이들이 성경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단순히 누구누구 장로의 손자, 누구누구 집사의 아들, 누구누구 성도의 자녀라는 생각에서 탈피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주도할 자원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성장 동력으로 반드시 길러내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하게 아껴줘야 한다.

어린이는 그저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의 본질이자, 닮아가야 할 모습이다. 또 한국교회가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이다. 올해에는 반드시 한국교회 전체 교인들 중 어린이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한국교회가 이 성장 동력을 통해 한 뼘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예장 호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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