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내 안의 거짓 고백과 부정들 사이로
소망은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이었던가
파란만큼 더 투명해
얼어버린 겨울 청잣빛 하늘 아래
자작나무와 자작나무 사이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첫 고백은
기다리며 기다리며 기다리며
겨울 모진 바람과
차갑게 얼어있는 땅을 뚫고 나온
복수꽃의 노란 꽃잎들
절박한 기도는 허공을 뚫고 나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느릿한 시간들이 요동치는 계절
비로소 눈뜨기 시작하는 봄 사이로
작고 여린 꽃잎들
온몸으로 찬양한다
시창작의 미학성은 그런 내용을 시라는 장르에 의탁하여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란 다른 장르와 달리 시창작론의 기법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문학적 감동을 극대화하려 하는 기법적 시도다.
그런 점을 이 작품 안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아니다’ ‘모른다’ ‘기다리며’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음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를 ‘정말 아니다’로 강조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강조와 함께 리듬이라는 시의 중요한 특징을 살리려는 운율을 목적하고 있음이다. 의미의 강조와 함께 시의 생명 중 하나인 운율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하려 함이다. 원래 시는 시가(詩歌)라는 노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소망은 눈 덮인 자작나무 숲’라는 구절처럼 시는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지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이 작품에서 소망을 설명할 때 그림을 그린다면 눈 덮인 자작나무를 그려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럼 그 자작나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은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내용을 비유하여 다양한 의미를 담고자 하는 목적에서 기인한다. 시는 비유라는 그릇 속에 그 의미를 감추어 두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해석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상 개연성이 있으면 모두 시가 추구하는 현답이 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