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내 안의 거짓 고백과 부정들 사이로
소망은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이었던가
파란만큼 더 투명해
얼어버린 겨울 청잣빛 하늘 아래
자작나무와 자작나무 사이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첫 고백은
기다리며 기다리며 기다리며
겨울 모진 바람과
차갑게 얼어있는 땅을 뚫고 나온
복수꽃의 노란 꽃잎들
절박한 기도는 허공을 뚫고 나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느릿한 시간들이 요동치는 계절
비로소 눈뜨기 시작하는 봄 사이로
작고 여린 꽃잎들
온몸으로 찬양한다

▲ 정 재 영 장로
화자의 마음은 마치 눈 덮인 자작나무 숲과 같다. 그래서 절박한 기도를 드린다. 그 결과 모진 바람과 차갑게 얼어있는 땅을 뚫고 나온 복수꽃의 노란 꽃잎들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것이다. 피어난 작고 여린 꽃잎들과 같은 것들이 온몸으로 찬양한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에서 봄의 절기만이 아닌 신앙의 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창작의 미학성은 그런 내용을 시라는 장르에 의탁하여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란 다른 장르와 달리 시창작론의 기법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문학적 감동을 극대화하려 하는 기법적 시도다.

그런 점을 이 작품 안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아니다’ ‘모른다’ ‘기다리며’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음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를 ‘정말 아니다’로 강조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강조와 함께 리듬이라는 시의 중요한 특징을 살리려는 운율을 목적하고 있음이다. 의미의 강조와 함께 시의 생명 중 하나인 운율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하려 함이다. 원래 시는 시가(詩歌)라는 노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소망은 눈 덮인 자작나무 숲’라는 구절처럼 시는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지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이 작품에서 소망을 설명할 때 그림을 그린다면 눈 덮인 자작나무를 그려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럼 그 자작나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은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내용을 비유하여 다양한 의미를 담고자 하는 목적에서 기인한다. 시는 비유라는 그릇 속에 그 의미를 감추어 두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해석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상 개연성이 있으면 모두 시가 추구하는 현답이 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