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희망은 개념적이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적 언어서 탈피해야
이스라엘이 망해갈 때 역사의 한복판에서 예언자들이 희망의 메시지 전달

말의 현장은 역사의 한복판이어야

그리스도의 언어는 게토화 됐다. 이제 교회 강단에서 외쳐지는 언어는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언어, 즉 개념적이면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이다. 또 학문적이다. 이러한 언어를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병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말들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이들의 언어를 사용하면, 성스럽지 못하고, 세속적이며, 천박하다고 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성서에 나타난 언어는 분명 현장에서 나왔다. 구약성서 예언자들이 사용한 언어와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언어를 보면 그것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레미아는 분단된 나라인 반쪽의 유대왕국에서 말을 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어린 예레미아는 감복숭아 가지에서 환상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이를 이루려고 했다.

또한 그는 부글부글 끓는 솥물이 북쪽에서 쏟아져 내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신흥제국인 바빌론의 침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레미아가 말해야 하는 곳은 한정된 종교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민족 전체가 당해야 할 사건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말해야 하는 현장은 민족의 현장이 아니라, 교회의 현장에 그대로 매몰되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목회자들의 입에서 외쳐지는 말들은 거의 대부분이 추상적이며,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목회자의 언어는 교인들의 현장에서 외쳐졌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이 유리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으며, 더욱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병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언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의 활동은 예레미아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의 예언활동은 군주체제가 이루어진 후부터 시작되었다. 다윗시대 이후 군주들의 횡포가 심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반영구적인 남북분단, 그리고 갈라진 두 나라가 한쪽씩 망해가는 과정에서, 예언자들이 말해야 하는 현장은 역사의 한복판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도인들의 말의 현장은 교회와 같은 한정된 곳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교회에 한정되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교회가 민족을 향해서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교인들의 입맛에 알맞은 천박한 목소리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병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향해 쓰레기 같은 말을 쏟아 내는 오류를 범했다. “사고로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느냐”, “예수를 안 믿은 학생들은 지옥에 갔을 텐데”, “대를 위하여 소는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등등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분명 교회가 부자 되면서 교인들의 입맛에 맞는 언어를 외친 결과이다.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지 못한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한국교회가 성서의 예언자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예수님의 잃은 양 한 마리의 교훈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한 마리의 양을 버리는 것은 99마리의 양도 버릴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민족의식이 살아있는 극소수의 목회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병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한을 가슴에 끌어안고, 민족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 사건을 말함으로서 박해시작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건을 말함과 더불어 박해가 일어났다.

“너희들이 잡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증언과 더불어 베드로가 투옥되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 당했다. 박해가 일어났다. 그것은 구약성서의 예언자 전승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말해야 하는 현장이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예수를 불법하게 죽인 그 앞잡이들이 굶주린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약자들을 집어 삼키려는 그런 현장이었다. 예수님의 사건을 전하면, 곧 정치세력이 박해하고 죽이는 그런 현장이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형태를 볼 수 있다. 하나는 교회의 운영을 책임진 지도층 인사들이 교회의 존속을 위하여 로마제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그리스도를 선교하는 길을 선택했고, 또 하나는 교회의 공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무명의 예수님을 따르던 민중들을 통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케리그마 형태인 전자는 예수님의 형태가 어떠했으며, 그를 누가, 어떻게 처형했는지를 말하지 않고, 단지 그 죽음의 의미만을 부각시켰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5장 3-7절, 빌립보서 2장 6-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며, 성서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비역사화 했으며, 십자가 사건의 장본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외쳐지는 대부분의 말은 십자가사건에 대한 의미보다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예수 믿고 천당 가라’, ‘영적성숙’, ‘하나님나라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 등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해 놓고,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마디로 행동하는 교회가 되라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마가복음은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들에게, 어떤 청년이 나타나 예수님이 이미 갈릴리로 갔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했는데도,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다는 말로 끝냈다. 이것은 바로 보잘 것 없는 여인들이 선 자리이며,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것이 생명을 거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도 로마제국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저들은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인들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진원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과 입을 통하여 유언비어 형태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이 퍼져 나갔다.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1986년, 한길사, 안병무)

제도적인 교회의 공적고백인 이른바 케리그마와 여인들의 입과 민중의 입을 통해서 따로 전해진 루머가 합해서 문서화 된 것이 <마가복음>이다. 이를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건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계속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순절, 그리스도교 탄생의 날

한국교회가 오순절의 사건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오순절이 무엇인지를,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병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 오순절 사건은 말의 사건 날이다. 오순절에 세계에 퍼진 유대인을 비롯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사람들이 모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국경과 문화, 이해관계, 언어의 장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성령의 말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순식간에 이러한 장벽이 무너지고, 알 수 없는 말씀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일대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예레미아가 끊임없이 해야 할 말을 함으로써 수난을 당한 장소, 예수가 최후의 말을 함으로써 처형된 장소, 스데반이 순교당한 장소, 바울이 최후에 체포된 장소인 예루살렘이었다. 그곳은 어용종교인들의 ‘부패의 장소’이기도 했다. 어용종교인, 귀족종교인들은 로마와 결탁하여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흘린 피가 아직 대지에서마르지 않고 있을 그런 장소이다. 바로 여기에서 오순절 말씀사건이 일어났다. 또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성령으로 입을 열게 한 말, 즉 증언한 자들은 종교귀족도 아니요. 성서전문가도 아닌 갈릴리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모두 갈릴리사람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된 셈인가”(사도행전 2장 7-8)

예루살렘이 멸시하여 이방인의 땅 갈릴리, 즉 오랑케의 땅이라고 하던 갈릴리, 선한 사람이 태어날 수 없다는 갈릴리에서 온 사람들, 저들이 바로 귀족종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 거리에서 말의 사건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자, 병신, 떠돌이, 여인,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순절 사건의 주체인 가난한 민중들이었다.

당시 갈릴리사람들은 민중의 상징이었다. 바로 이들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변혁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공동체가 세워지는 날이 바로 말씀의 사건 날이다.

이것은 정치적 이상의 사건이며, 역사의 개벽을 여는 사건이다. 예언자 말의 현장은 어떤 구별된 종교영역이 아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인간 삶의 현장이었다.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로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대접받지를 못하는 기독교가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영미선교사들이 우리문화와 역사를 무시한 정통보수주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이식시킨 결과가 아니겠는가.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부르짖은 ‘정교정책분리’에 따라 민족의 아픔을 자각하지 못하고, 천박한 목소리만을 냈다. 대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 앞에 굴복하고,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하는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교파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부 신학자들은 한국교회 남북통일을 말하기 전에 교회분열을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분열된 한국교회가 남북한 통일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먼저 한국교회가 하나 되고, 남과 북이 하나 될 수 있는 기독교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교회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기 이전부터 양측의 교회가 만나 교류를 통해 통독의 중요성을 제기해 왔으며, 서독교회는 많은 예산을 들여 동독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다. 이것이 독일 통일의 근간이 된 것이다. 독일교회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일러주는 대목이다. 한국교회는 분단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민족통일에 대해서만큼은 침묵해 왔다.

이제 한국교회도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향해 행동해야 한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가 같은 남북한 민족이 서로 헤어져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70년 동안 밀폐된 채, 쇠뇌당하여 노예화 된 것조차 모르는 이북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데 주제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전 한민족의 영원인 통일을 관철시키는데 주역이 되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정치단체가 아니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공동체이다. 인간애는 민족애며, 그것의 구체화가 민중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의식화하며, 그러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주체로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며,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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