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를 성서는 “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하였다. 개개인의 삶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이는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계시한 말씀이다. 그런데 정말 교인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그 빛과 소금의 소명을 가진 자들이 모인 교회는 빛과 소금의 저수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성서에 계시된 교회는 모든 것을 서로 유무상통하는 공동체 사회이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어 쓰는 생활 공동체 임을 사도행전에 계시되었다.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 중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이들은 보호자가 없어 생활이 핍절하거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구제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신명기서에는 “ ······ 네 성 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4:29) 동족이 굶주리거나 헐벗으면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을 주어 가난과 어려움을 해소하여 주라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러한 성경의 계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생활 속에서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책임을 강조한다. 이 책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경계를 나타내는 영적인 의무다. 세속 경제가 이전보다 나아졌다. 따라서 궁핍한 사람도 더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청년 실업으로 인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경제적으로 핍절해 지인들에게 생계를 위탁해야 하는 세대와 정년퇴임하고 난 후에 몸은 늙고 수입은 적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 빈민층 노인세대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상대적 가난한 세대의 등장으로 계층별 소통이 막히고 불균형이 사회의 문제로 인해 더욱 사회는 혼란해지고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사회 참여는 일찍이 해방신학으로 인해 기독교 내에 사상적 대립이 첨예 했던 칠팔십 년대처럼 같은 기독교 안에서 대립현상을 낳자고 한 이론은 아니다. 다만 사상적인 대립이 아니라 실제 가난에 자에 대한 해소 차원의 기독교 몫에 대한 이해를 위해 기독교가 사회의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방안을 강구하자는 의미다.

오월 가정의 달에 기독교가 좀 더 적극적인 방안으로 교회주변에 거주하는 빈곤층에 대해 실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 교회가 사회 문제의 한축을 담당하자는 의견이다. 교회가 서 있는 곳은 사회의 한 복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거룩한 곳이지만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의 어려움에 참여해 교회의 자산을 함께 나눔이 필요하다. 교회의 자산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나가서 재화를 취득하여 하나님의 몫을 교회에 헌납한 재원이다. 그렇지만 초기교회의 행적 가운데 특기할 만한 기록은 교회에 귀의한 성도들이 당시대의 가난하고 어려운 층인 과부와 고아와 그리고 독거노인들에게 자신의 재물을 교회에 헌납해 이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하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초대 교회는 교회가 세상을 행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최우선이지만 당시대의 어려움을 외면하고서는 복음 전파도 가능치 않기 때문에 신앙이 든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납한 재물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면서 복음을 전파 한 결과 초기교회에는 날마다 믿는 무리들이 더하였다 한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사명이 첫째다 그 다음은 바로 어렵고 가난하고 보호자가 없어 세상 살아가는데 힘이 드는 계층에게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구제다. 이 두 가지가 병행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다고 믿는다.

문제는 교회가 선교와 구제의 사명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교회든지 약간의 선교와 구제는 다들하고 있는 줄로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체면치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임무이며 교회는 그 일을 하기위해 세상에 세워졌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들은 우선 교회가 인력이 많아야 하고 다음은 교회가 커야 무슨 일이든지 힘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교회 불리기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제 교회는 사회의 약자인 가난한 자들, 억눌린 자들, 보호자가 없는 자들, 독거노인들, 과부와 고아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져 그들의 삶을 알뜰하게 챙기는 사랑이 있었으면 한다. 5월 가정의 달에 교회주변을 샅샅이 살펴 한 영혼이라도 교회의 따뜻한 손길을 펴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만난 자들이 없었으면 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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