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매몰차게 인적이 드문 공터에 버리거나, 베이비박스에 넣어두거나, 심지어 인터넷 경매에 올려 팔거나 그 형태도 천차만별이다. 인간으로써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진 셈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은 부모일까, 아님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정부의 책임일까. 아마도 모두의 책임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다만 어른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의 패착…시대 흐름 몰라

그래도 가장 큰 책임을 묻자면 그 대상은 정부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들의 유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이들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무조건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이 가능하게 만들어, 가뜩이나 출생신고를 꺼리는 부모들은 급기야 아이들을 내다버리고 있다. 출생신고를 함으로 인해 미혼모로 낙인이 찍혀 훗날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출생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내놓은 입양특례법은 실효성에서도 한참 뒤쳐질 뿐 아니라,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누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겠는가.

당초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일념만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결국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입양이 아닌 유기였다. 그나마 베이비박스는 양심이 있는 축에 든다. 몇몇은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화장실에 버리거나, 죽여서 택배에 싸서 친정어머니에게 보내는 등 인면수심의 행태도 심심치 않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아이들은 일말의 선택권도 없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어찌 보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마지노선이 입양이었는데, 정부가 이 길을 법으로 막아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입양특례법이 왜 문제가 됐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답은 간단하다. 실제로 아이를 입양시키겠다고 마음먹은 부모들은 대부분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미혼모들이다. 그것도 나이가 중고등학생처럼 어린 미혼모가 대다수이기에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입양을 시키고자 마음먹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미혼모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데, 이제 20살도 되지 않은 학생들이 그것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이를 몰래 버리자는 생각에 함몰되어 영유아를 쉽게 유기 하는 것이다. 건전한 입양을 조성하고, 국내입양 확산을 꾀했던 정부로써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한 법이 아이뿐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한 것이다.

육체적 쾌락만 쫓아

그렇다고 작금의 입양 문제를 정부의 문제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아이를 낳은 친모와 친부에게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성윤리 의식의 부재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가 많아 졌다. 이들 중 몇몇은 처음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몰래 낙태를 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몇몇도 이내 포기하고 만다. 원치 않는 아이였기에 이들에게 특별한 감정도 없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이를 낳아보겠다고 다짐한 몇몇도 출산에는 이르지만, 아이를 키울 길이 막막해 낳자마자 아이를 버릴 생각부터 한다. 하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아이를 버리는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에서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양육하는 부부들 중 몇몇은 또 아이에게 폭행을 일삼거나 심지어 아이를 살해하는 일까지 버젓이 자행한다. 결국 원하지 않는 임신이 소중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던지고 있다. 애당초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만을 쫓다가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미혼모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자신의 유전자를 꼭 닮은 생명을 생면부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입양 문제는 바로 입양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시대가 변하기는 했지만, 핏줄을 중요시 하는 우리 사회에서 입양은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다. 그래서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쉬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과정이 떳떳하지 못한 감도 있지만, 어찌 됐든 아이를 입양해 기르겠다고 결심한 부모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모르게 아이를 입양하고 자신의 아이처럼 평생을 길렀다. 그런데 정부의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가정법원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까지 따라 입양은 더욱 어려운 길로 인식되어 졌다. 따라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더해져 복잡한 입양절차는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가정에서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 오늘 입양특례법의 재개정을 목 놓아 울부짖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양특례법 재개정 시급

이에 따라 작금의 입양특례법은 재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개정이 되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가장 핵심은 현재 필수적으로 되어 있는 출생신고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것은 친모나 양부모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친모의 경우 미혼모라는 낙인이 평생 갈 수 있고, 양부모의 경우에도 자신들이 친부모라고 선한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더욱이 무턱대고 출생신고를 하라는 것은 바꿔 말해 아이를 유기하라는 의미가 포함됐기에 한시라도 빨리 재개정이 필요하다. 자칫 재개정에 대한 시간을 끌 경우 버려지는 아이들은 지금의 곱절은 늘어날 수 있다. 단순히 버려지는 것은 둘째 치고, 아이를 죽음에까지 이르는 상황에서 두손 놓고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생명이 더 이상 상처받거나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당장 법개정이 절실하다.
여기에 미혼모들에 대한 생명경시 풍조를 버리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크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단순히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물건처럼 버리는 일이 없도록 교육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지만, 미안하다는 마음이 크다는 생각이 들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 등을 실시해야 한다. 더불어 이들이 고통당하지 않도록 한국교회 등은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미혼모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나서지 않으면 이들이 갈 곳이 없음을 진심으로 깨닫기를 바란다.

5월 가정의 달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밝게 미소 짓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가정으로 화평과 화목이 흘러넘치고, 남편은 부인을, 부인은 남편을, 자식은 부모에게 또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한없이 주는 가정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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