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희뿌옇게 자자드는
어스름 산기슭 한 자락
진노랑으로 물든다
어두울수록 애타는 그리움
이 밤에 피어나 누굴 기다리는 걸까

 

▲ 정 재 영 장로
꽃이 저녁까지 오므라들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지기 때문에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낮에 피는 꽃과 달리 어둠이 꽃을 피게 하는 식물이다. 원래 귀화식물이지만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작품의 시간과 장소 설정은 달빛이 희뿌연한 시간의 어스름한 산기슭이다. 즉 어둠과 빛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다. 그런 시간과 공간 속에 화자도 그리움의 정서를 묶어 두고 있는 것이다.

들판 한가운데도 아닌 산자락의 장소를 의도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생활과 거리를 조금은 두고 있는 마음을 표출했다 하겠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일탈인 것이다. 그리움이란 것도 달맞이꽃처럼 어둠 속에서 더 간절하게 꽃피우는 성질과 같다는 논리를 부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묻어둔 것일 수도 있다. 왜냐면 과거에 대한 총괄적 삶의 지칭이라고 보아야 타당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후자에 가깝다고 하겠으나,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알게 해주는데 ‘물든다’고 표현하는 점이다. 이 말에서 화자의 그리움에 대한 정서가 정지된 것이 아닌 점진적인 확산과 진행의 계속성인 것을 알게 해준다. 왜냐면 그리움은 어두울수록 점점 노란색으로 진하게 물들고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창작기법을 감각화 작업의 일환이다.

여기서 어둡다함은 단순하게 빛이 없는 밤으로 한정시켜 연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걸음 나아가 인생의 밤으로 확대해석함도 가능하다. 삶의 현실에서 밀려나간 산비탈과 같은 장소와 빛을 잃은 삶이 힘들게 된 시간의 존재에 대한 담론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시는 언어로 만든 그림이라는 정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한 장면의 그림 같아서 미학적으로 분명한 위치를 가진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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