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신학대학원을 다녔던 김 모 씨가 강남역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 이후 언론과 SNS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 현상이 문제화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김 씨가 여성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으로 보고 있으나 이 사건 이후 여성과 남성 간에 성별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 사건이 ‘여성 혐오 살인’인지 ‘묻지마 살인’인지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가해자가 우연이든 고의이든 여성을 자신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는 것부터 의도와 상관없이 이미 ‘여성혐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가해자 스스로 나는 여성혐오자라고 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그는 여성을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있고 또 함부로 하고 싶은 존재로 여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가부장제 사회의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의 내면에는 여성은 약하고 따라서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런 가운데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상대적으로 남성이 손해를 보는 일이 있게 된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 자체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풍조가 여성비하 혹은 여성혐오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같은 인식은 비단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가부장제사회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여성들도 대대로 여성들은 조신해야 하고 밖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보다 집안에서 살림을 배우다가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서 아이 낳고 사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남성이 아닌 여성에 의한 여성혐오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와 무관한가.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과거 신학대학원에 다닌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 목회자를 꿈꾸었던 젊은이가 살인자로 둔갑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신학교를 다니다 자퇴 후에 교회에서 일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 곳은 교회였을 가능성이 크다.

교회는 드러내 놓고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교적 가부장제에 의한 남녀 차별을 깬 것이 기독교 교육의 힘이었다. 다만 교회는 오랫동안 제도적으로 여성 차별을 구조화시켜 왔다. 성경 몇 구절을 근거로 여성을 남성의 보조 역할로 여기고 헌신과 순종은 하되 감히 권위는 갖지 못하도록 가르쳐왔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여성은 식당 봉사와 안내, 꽃꽂이, 심방 등 기능적으로 동원되는 존재로 굳어지면서 아무리 많은 기여를 해도 목사 장로 등 항존직에 이름을 올리기 어려운 제도적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 한국교회가 130년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복음 전도와 교회 성장이다. 최근 들어 일반인은 크게 관심이 없는 이슬람과 동성애 반대에 한국교회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한국사회의 도덕적 가치의 붕괴를 염려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교회를 수호한다는 명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교회 내 여성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 이 문제로 인해 교회 존립이 심각해 질 거라고 생각하는 목사나 지도자는 단 한사람도 없다. 오히려 대다수 목사와 교인들은 ‘교회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도 목사 아버지가 친딸을 때려 죽여 방치하고, 목사가 여자 교인들을 강간 성추행하고, 신학생이 수표를 위조해 성매매하는 사건에 이어 화장실 살인 같은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마다 ‘기독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내 교회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눈감고 외면한들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는가. 조금 심하게 말하서 우리는 살인 방조자이며 사회적 책임을 게을리한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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