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온통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마치 중한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전방위적인 생태계 파괴 현상이 도미노처럼 일어나고 있다. 삼림지역이 광범위하게 소멸되어 평형이 깨어지고 있으며, 장차 3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물부족과 식량부족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지카바이러스 등 각종 열대성 질병들이 창궐해 인간의 삶의 질까지 위협하고 있다.

뒤늦게 지구를 지키기 위한 각 나라의 환경보존 운동이 눈물겹게 일어나고 있으나, 몇몇 나라들의 무책임한 개발정책은 오히려 환경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구의 생명이 촉각을 다투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신 푸르른 대지를 회색빛으로 덧칠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가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도와 더불어 직접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는 생명보존 운동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인간에게 정복당한 자연

사실 기독교는 그동안 환경오염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먼발치에서 지켜만 봤다. 여기에는 과거 손봉호 교수가 한복협 월례발표회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인간이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 기독교의 창조교리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간이 자연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기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에 의한 것들만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이익에 반하는 것들은 철저히 짓밟힘을 당했다. 인간은 그것이 살아서 생동하는 동식물이든, 아니면 산과 바다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라도 방해가 되면 파괴했다. 그리고 자연파괴를 인간의 생육을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정당화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의 자연이 점점 시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이 지구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몫이 아닌 후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또 강대국만의 것이 아닌, 지구촌 모두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쉽게 오염시키는 것은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정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뤄 푸름이 지속되는 것을 더욱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고, 창조질서 보존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기독교는 창조질서 보존이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오히려 자연 파괴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교회를 화려하고 거대하게 짓는데 열중했다. 도심의 각 거리마다 백화점보다 더욱 휘황찬란한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고, 1년 365일 화려한 십자가 네온사인을 켜놓은 채 성도수를 한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애썼다.

석유도 나지 않는 이 나라에서 굳이 타지역 성도까지 유치하려는 욕심에서 길거리에 기름을 뿌리고 다녔으며, 성탄절이라도 되면 온 동네가 불야성을 이루고도 남을 불빛이 교회를 칭칭 감았다. 여기에 날씨가 더우면 덥다고 에어컨 수 십대가 예배당을 식혔으며, 추우면 춥다고 거대한 온풍기 수 십대가 교회를 펄펄 끓였다. 여기에 담임목사는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고급 세단을 타면서 기름을 펑펑 썼고, 이에 질세라 이름 좀 있다는 장로들도 대결이라도 하듯이 외제차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자연과 공생하겠다는 노력은 1%도 없었다.

 
한국교회, 환경운동 행동으로 실천하라

대형교회 건축양식 지양하고, 주일 예배 에너지 낭비 줄여야

환경오염이 심각해짐에 따라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증가하고 있다. 소중하게 아껴 쓰다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지구가 병들어 각종 이상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기온상승으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생태계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이에 자연은 슈퍼태풍, 쓰나미, 지진,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4계절의 뚜렷한 온대성 기후는 온데간데없이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되고 있다. 여기에 이상 기온과 초미세먼지 주의보 등은 국민의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에 처했다.

그런데 사태의 심각성과 달리, 누구보다 창조질서를 보존해야할 한국교회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는 상처받은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백방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만은 뒷짐을 지고 바라보고 있다. 환경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맴도는데, 미처 행동으로까지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은 특정한 몇몇 단체들만의 사명이 되어 버렸다.

머릿속으로라도 환경을 보존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다행이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이마저도 없는 듯 보인다. 그저 부흥과 성장에만 목을 매어 그 밖의 소중한 것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분명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온전히 보존해야 하는 것이 사명임에도 교회부터 성장시키고 하겠다는 궤변만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이다.

단순히 대형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환경오염과 무슨 관계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분명히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클수록 에너지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작은 집에서 사용하는 전력소모량과 큰 집에서 사용하는 전력소모량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물며 웬만한 백화점만한 예배당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는 굳이 수치로 따지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주일 예배만 출석해도 실제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더운 날에는 더욱 에너지 소모가 심해진다. 냉난방을 돌리고, 대형 스크린 영상시설을 운영하며, 컴퓨터 등 전산화, 자동문, 엘리베이터, 마이크,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음향장비 등 일일이 다 따지지 않아도 주일 예배에 소모되는 전기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지비용만 생각해도 억대를 넘나든다. 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연적 손상까지 따지면 가격을 책정하기 불가능하다.

여기에 먼 거리에 사는 교인들을 데리러 오려고 운행하는 셔틀버스 등 자동차 연료의 낭비도 만만치 않다. 수십대의 버스가 서울에서 경기지역까지 기꺼이 왕래를 하는 동안에 길거리에 흘리고 다니는 연료비는 웬만한 교회를 충분히 운영하고도 남을 액수다. 여기에 교인들이 스스로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연료까지 계산하면 말 좀 보태서 ‘에너지 낭비 대회’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교회는 말로는 생명의 종교라 자신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해야 한다고 모순적인 발언만을 일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조차도 없다. 그저 기도하면 된다는 다소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순간에도 지구의 환경은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방관자적인 입장으로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대로 두다가는 푸르른 대자연의 생동하는 기운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날이 도래할지 모른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태초에 보기 좋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온전히 보존하는데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두 무릎을 꿇고 열심을 다해 기도를 드리는 것을 넘어서 실제적인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단지 몇몇 대형교회 위주로 하거나,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단체나 기관만의 사명으로 미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

우선 한국교회가 구속신앙이나 부흥과 성장을 위한 세속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생명공동체를 세우는 생명목회와 녹색교회 운동을 적극 벌여야 한다. 적막한 회색빛으로 칠한 예배당이 아닌 향긋한 꽃내음이 풍기는 자연 그대로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들이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지배 가운데 고통당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줘야 한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데 그저 남들도 하니까, 목사님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진심으로 창조질서를 보존해야할 명분과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우선 목회자부터 환경보존을 위한 인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예배당 십자가 네온사인 철거, 재생복사지 사용, 여름철 전력사용 10% 줄이기, 교육관 옥상 위에 인공 논 조성, 빗물저장시설 설치, 예배당 주변 텃밭 조성,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환경주일 및 탈핵주일 지키기, 환경과 관련한 실생활 살피기(절전소 운영 등), 숲길 체험교실 운영, 음식물 줄이기, 마을 유해 물질(플라스틱 등) 소각 방지를 위한 수거처리, 친환경 생태(한옥) 건축, 친환경 사과농사, 유기농 밭농사, 생태화장실 운영 및 퇴비화, 교회주보 재생용지 사용 등 등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설교시간에 끊임없이 환경보존에 대한 인식개선에 노력하고, 창조보존 관련 세미나나 사경회 등을 개최해 환경보존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온전하게 돌보고,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는 일에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동참할 수 있는 사업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우리 농산물로 밥상을 차리고 깨끗이 비우는 ‘생명밥상 운동’도 각 교회마다 벌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위기에 처한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에너지로 심각한 상황에 이른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대안으로 초록가게 운동, 친환경 문구사용 캠페인 등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부터 시작된 환경보존 운동은 곧 지역사회로 자연스럽게 이식되고, 이는 곧 모두가 동참하는 환경보존 운동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환경 현안에 대한 신앙적 성찰과 함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교회나 사회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몇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환경운동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신앙운동이자, 생명을 보전하는 생태운동으로 영성운동 및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운동임을 명심하고, 탈핵, 노후원전소 폐기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환경 현안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은 의무이자 책임이다. 한국교회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침묵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한 생명의 가치가 상실되는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생명을 택하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 본연의 성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스리는 ‘청지기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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