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끝까지 잡는다. 94세 아우슈비츠 경비병 실형”이란 기사가 눈길을 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일한 94세 노인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70년이나 지난 일을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물은 겁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비를 섰던 ‘라인홀트 한닝’입니다. ‘한닝’에게 내려진 판결은 징역 5년의 실형. 70년 만에 집단학살 방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게된 겁니다.

‘안드레아스 브렌델’(독일 검사)는 “오늘은 저에게도 특별한 날입니다. 이번 판결은 독일에서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한닝’은 재판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알았는데도 막으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했습니다.

‘헤디 봄’(아우슈비츠 생존자)는 “70년이 지나 정의가 마침내 실현된 순간 여기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말하고 싶습니다.”

‘윌리엄’(아우슈비츠 생존자)는 “이번 아우슈비츠 판결로 미래에 누군가 홀로 코스트를 부정할 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재판이 특별히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 아우슈비츠의 마지막 공판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던 다른 90대 노인 2명도 재판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건강 문제 때문에 불투명한 상황. 하지만 독일 당국은 “단 한 사람의 나치 전범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가 100세까지 살더라도 끝까지 조사는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출처 : 연합뉴스TV 2016-06-18.)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정의가 있을까? 일제의 만행에 대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우리 청소년들은 또한 얼마나 알고자 할까?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치욕의 역사를 치욕의 역사 그대로 배우고 다시는 그러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교육되고 대비해야 함에도 긍정적인 말. 성공에 대한 말. 칭찬하는 말. 사랑하는 말 등으로 포장되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혼잡함에 빠져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대체 일제는 대한민국을 향해 무엇을 참회하고, 어떻게 보상하였기에 할 일을 다 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일까? 도대체 일제가 말하는 것들을 누구와 합의 했다는 것일까? 궁금할 뿐이다.

자신들은 전쟁 피해국이지 침략국이 아니란 해괴망측한 괴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런데 무엇을 용서해야 하며, 무엇을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이를 받아들인단 말인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일제(日帝)는 초등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통하여서 까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교육하는데, 별반 대책이 보이질 않는다. 세계 속의 소수민족인 유대민족에 비해, 더 큰 영토와 더 많은 국민이 있는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있는 것일까? 독일은 어떻게 그토록 유대인을 향해 끊임없는 참회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데, 일제의 속내는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침묵과 우방임 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작금의 영국 등 유럽 발 사건으로 온 세계가 긴장을 하고 있지만,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견고해 보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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