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날 선 기도처럼
빈 가슴 세우는 이름을 가지고도
이물의 끝자리에 가 닿지 못한 슬픔이 저녁에 닿고 있다
달빛이 풀어 놓은 은빛 실타래
물결마다 비문을 받아 품고
굳게 부여잡은 애착의 버릿줄*로
고독한 영혼의 기척을 느끼고 있는가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 아름다운 건
당신 안에 온전히 갇힐 수 있기 때문이려니
머잖아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물은 흐르고 나는 머문다
무른 심장에 표창처럼 꽂힌 채

* 배가 정박할 때 따내려가지 않게 묶어 두는 줄

▲ 정 재 영 장로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대상을 통해 관념을 언어화 시킨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엘리엇이 말한 시가 정서를 객관상관물로 그러낸 이 작품은 사물로 정서를 표현해야 하는 사물시가 특징적이다. 이 작품처럼 닻을 통해서, 닻이 가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화자의 정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장면은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 뜻은 단순히 이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고운 말에 서정성을 의탁하는 면에서 수화자에게 차분하게 깊은 성찰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의미다. 이처럼 아름다운 언어의 사용은 수화자에게 동일한 힘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버릿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철저한 준비를 한 것을 알게 해준다. 배의 머리 쪽을 말하는 ‘이물의 끝자리‘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구조주의 면에서 보면, ‘달빛이 풀어 놓은 은빛 실타래’는 닻과 같이 수직적 이미지다. 반대로 ‘물결마다 비문을 받아 품고’라는 것은 강이 가지는 수평적 이미지다. 이런 수직과 수평의 상이한 두 이미지는 3차원의 입체적 그림을 만들고 있다.

강물의 물결에 비치는 달빛 풍경을 은빛 실타래를 풀어 만든 비문이라 함에서 이 작품의 미학성을 확인시켜 준다. 드러내지 않고 하늘이 내려준 달빛이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를 비문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은 작품 안에 시의 생명력을 탄탄하게 해주는 함축과 암시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는 떠나도 닻은 하늘을 향한 기도처럼 그 배 안에 머물고 있음을 차용하여 갇힘으로 오는 평안, 즉 고독하기에 가치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 무른 심장과 단단한 금속성 표창을 연결하는 수사법에서 생성되는 미학성에서 볼 때 융합시론인 양극화가 만드는 기상(conceit)의 존재를 극명하게 확인해 주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