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위축된 민중신학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용복 박사)는 지난 11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죽재 서남동 목사 32주기 기념 추모예배 및 포럼’을 개최했다.

김용복 이사장은 “오늘날과 같이 민중이 고난당하고 죽어가는 시대 속에서 민중신학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한국의, 그리고 아시아의 가장 창조적이며 진보적인 신학인 민중신학을 살려내는 일에 열성을 보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최영실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마태복음 12장과 25장을 본문으로 대화설교를 나눴다.

서광선 교수는 “민중신학자들과 민중교회 목사, 사회운동하는 목회자들의 만남과 대화, 행동을 재활시켜 새로운 민중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 새로운 사회학적, 정치경제적 분석과 해석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실 교수는 “서남동 목사님 가르침대로 ‘한 맺힌 자들의 소리’를 듣고 응답해야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도리어 지배와 경쟁논리를 따라가며 ‘한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며 “불의한 지배체제 하에서 죄인 표시를 달고 신음하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에서는 김용복 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민중신학의 21세기적 지평’에 대한 발제와 감신대 최순양 박사의 논찬, 독일 마인츠대 볼커 퀴스터 교수의 서남동 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 강연 등이 이어졌다.

또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유예은양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참사 전후의 신앙에 대해 증언했다.

박은희 전도사는 “참사 직후 기도하고 성경책 보는 것, 찬송 부르는 걸 할 수 없었다”며 “아이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괴로웠던 우리와 십자가상에서 서서히 죽어 가신 예수님을 지켜봐야 했던 제자들, 그리고 어머니의 고통이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민중을 개, 돼지에 비유한 처사는 국가를 운영하는 기득권층의 반주체적인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반민중적 비인간적 사상으로 무장한 인사들의 기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서남동 목사는 한국 민중신학의 씨앗을 뿌리고 일구었던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우뚝 솟은 큰 산이라 할 만하다. 서 목사의 삶과 신학은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으며, 삶 속에 함께 녹아 있는 신학,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의 신학이었다.

서 목사는 강단의 신학자의 소유물처럼 여겨졌던 신학을 민중 속으로, 교회 대중 속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성육신하도록 이끈 신학자였다. 서 목사의 ‘삶의 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구체적인 삶 한복판에서, 역사 한가운데에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살리고,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도록 인도해 줬다. 상아탑 속에, 교회 울타리 속에, 교리와 신학 전통 속에, 성서 안에 감금된 예수를 해방하여 우리의 가난하고 서럽고 한 맺힌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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