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프랑스 니스 해변 불꽃축제에서 구경 나온 어린이 10명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 84명이 또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 같은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세계인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가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이 절규를 들으신 하나님은 분명하게 산자인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그렇다 “네 동생(이웃)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산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터키 해변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부모를 따라 조국과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다가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일란이 죽임을 당한지 얼마 안 돼 또 4살 된 아이 야니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죽임’을 당했다.

야니스를 살리려고 병원으로 달려간 그의 아버지 미카엘은 “야니스를 보는 순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일란 같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야니스의 아버지 미카엘의 이 같은 설명은, 야니스의 ‘피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피의 소리’를 듣고, 여기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산자의 몫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피의 소리’를 듣고, 산자들을 향해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이날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 프랑스 니스 해변은,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할아버지부터 아이까지 가족단위로 축제를 참석했다. 하지만 즐거워야할 축제의 자리가 테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바다에 돌을 던지며, 또는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참혹한 ‘죽임’의 그늘이 닥쳐 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날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모는 트럭에 희생을 당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야니스처럼 엄마와 아빠 등 가족과 함께 불꽃구경을 나왔다가 ’죽임’을 당했다.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가장 참혹한 날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처음 불꽃축제 참여하고, 동시에 마지막 불꽃축제의 자리가 되고 만 것이다.

니스지역 축구심판의 아들인 메르디도 ‘죽임’을 당했으며, 쌍둥이 누이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할아버지부터 아이까지 일가족 7명중 6명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도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임신 7개월된 부인을 밀어내고, 자신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 부인과 뱃속의 아이에 대한 생사는 지금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왼쪽다리를 잃으면서, 13살 손자와 18살 손녀를 살린 할아버지의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손자들을 사랑하는 할아버지뿐이다. 어떤 할아버지라도 그 상황에서 나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는 이야기는 산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가습기사건도, 욕망으로 가득찬 인간의 사악함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죽임’을 당한 희생자는 대부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했던,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되는 테러와 내전, 돈벌이에 눈이 먼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피의 소리’는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고 있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전쟁과 테러의 놀음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의 잔악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오늘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계속해 ‘죽임’ 당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임을 당한 자의 ‘피의 소리’를 듣고, 여기에 응답해야 할 의무는 산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분명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정의와 생명, 사랑과 행복이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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