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7월은 제헌절이 있는 달이다. 법과 질서를 생각해보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politika 에서 정의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그것은 각자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계급이 있는데 첫째는 생산계습이요 둘째는 방위계급이요 셋째는 통치계급이라고 했다. 생산계급은 서민이고 방위계급은 군인이며 통치계급은 철학자이어야한다고 했다. 즉 위의 세가지 질서가 충돌 없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정의구현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말이다.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한다는 망발을 했다. 사실 이름조차 거명하고 싶지 않는 인물이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가? 헌법 1조 1항도 의식 속에 없는 사람이 그것도 교육부 고위직이라니 이렇게 법도 질서도 없는가?

칼힐티는 인간생활의 세가지 질서를 말했는데 첫째, 힘의 질서 둘째, 법의 질서 셋째, 사람의 질서라고 했다. 그런데 물리적인 힘의 질서는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고 법의 질서는 시계처럼 싸늘해서 인간미가 없는 사회가 되며 오직 사람의 질서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원만하게 하며 행복한 사회복지 국가를 이룬다고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현대는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위기불안의 시대 아노미(Anomie) 현상속에 방황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혼돈하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세우셨지 않는가? 법과 질서가 회복되면 인간의 행복도 회복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세가 되면 특징이 하나 있는데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권사도 모든 성도들은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진실이라는 땅에서만 자라는 꽃이기 때문이요 희생의 가슴에만 맺히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교회의 일각에서는 예수의 사랑은커녕 세상 단체보다 험한 모습을 봐야하는 서글픈 현실이 그것이다. 성경의 법은 무엇일까? 성경의 질서는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깊이 생각해보자. 사회의 실정법을 잘 준수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 교회의 분쟁은 교회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풍토를 만들어야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계22:16)

예수께서 피를 부어 세우신 교회를 지배하려해서는 안된다. 거기에 내 자존심이 상하고 때로는 조금 물질적인 손해가 있어도 초대 교회의 성도들까지는 못해도 그렇게 순수하고 믿고 싶은 믿음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서로 잘못을 네탓이라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배추의 전잎이 시들어갈 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했다고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주님의 교회는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둡다. 교권에 강한지도자보다 예수는 눈물이 많은 지도자를 보고싶어 하신다. 제발 교회법으로 교회 안에서 해결해보자. 사회법정에다 교회문제를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사회법보다 교회법으로 해결하자! 더 좋은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명예와 권력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모습을 교회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죄까지 보듬고 회개하는 원로들과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지도자들이 다 되지 않겠는가? 법과 질서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법과 하나님의 성령의 법으로 교회가 다스려지기를 바란다.

본지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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