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소 영 목사

수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는 분별해야하는 선택의 시간들이 있다. 선택에 대한 결과의 영향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는 평소에 가지고 본인의 가치관, 사상, 문화, 생활습관, 환경 등은 삶의 모습들이 기준이 되고 분별력이 된다. 왕상22장에 두 명의 왕이 나온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기록은 왕상 16:29, “아합은 사마리아에서 2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이다. 아합 왕의 아버지인 오므리 왕은 ‘여호와를 숭배하는지’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개인의 이익과 자기세력 확장에만 관심을 가져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치를 하며 다스렸다. 그 영향력으로 자신의 아들 아합에게 바알 숭배자 이세벨과 결혼시킴으로 하나님의 신앙을 심어주지 못한 죄악 된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유산으로 딸에게 물려주었다. 그런 아합왕에 대한하나님의 평가는 왕상16:29절 22년 다스렸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하고 싶고 성경의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글자, 단어, 숫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있다. 2란 숫자가 성경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숫자이고 1은 하나님의 수로 인식되어있다. 성경에 아합 왕에게 2를 두 번 표현 한 것은 아합왕이 사람위에 사람을 다스림으로 백성을 위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군림한 군주라는 하나님의 평가다. 하나님은 이미 지도자는 섬겨야 산다는 것을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란 기록과 함께 아합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와 반대로 남 유다는 여호사밧이란 선한 왕이란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치료의 뜻을 가진 아사 왕은 하나님이 유다백성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정치를 하였고 그 신앙을 아들 여호사빗에게 가르쳤다. 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여호사밧에게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한다는 본질을 알고 있기에 아람과의 전쟁에서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지도자의 바른 신앙은 중요하다.

지도자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실수하는 것이 인간이다. 여호사밧의 최대의 실수는 아합왕의 딸과 자신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 후유증은 겨우 다윗의 혈통하나 남긴 것으로 다윗가문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유다백성의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아합왕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그 부모에게서 배운 것은 빼앗고 죽이고 우상에게 절하는 배도밖에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배운 그대로 유다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렸다.

아달랴가 다윗가문을 멸절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들이 누구인가? 겨우 요아스 왕자 하나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아달랴 주위의 측근들이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대적하는데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반전은 있다. 바른 신앙을 가진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 하나님은 다윗의 혈통 요아스를 세우셨고 여호야다를 통해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상기시켰다. 언제나 위기 속에서도 바른 신앙을 가진 지도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 아달랴 측근의 신앙인인가? 여호야다의 신앙인 인가?

연합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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