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을 데려다가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 세워 달리게 할 것이다. 1천인 대장이나, 50인 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 할 것이다…(중략)…너희의 남종과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 먹고 양떼에서도 10분의 1세를 거두어 갈 것이며, 너희들의 마저 종으로 삼으리라”(사무엘 상 8장 11-18절)

이 성경구절은 출애굽 계약전통에 바탕을 둔 부족동맹의 입장을 집약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왕권을 수립함으로써 지배자와 피지배자, 노동 및 경제적 착취와 인권유린, 민이 주인의식을 박탈하게 되리라는 경고이다. 그런 체제는 이스라엘이 군국주의로 가는 길이었다.

이같은 왕권수립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거부하는 것이다. 즉 이집트에서 자신들을 행방시킨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며, 출애굽전통과 부족동맹정신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울까지만 하더라도, 부족동맹의 바탕위에 출발했다. 그는 전투사령관 위치에 있었다. 통치체제도 확립되지 않았다. 그릭호 통치영역도 분명하지 않았다. 성서에 사울이 다윗과 대결관계에 있으면서, 추태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 왕조사도 어용사가들에 의해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윗에게 와서 본격적인 왕권정치가 시작됐다. 그는 때로는 불레셋의 장수로 임명되어 이스라엘과 대결해야 하는 입장에 섰으며, 정략결혼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정도가 아닌 수단까지도 불사하면서 북이스라엘까지도 흡수 통합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빼앗아 개인영지로 만들었다. 또 그 곳에 거대한 궁전을 세우고, 그곳에 하나님을 고정시킴으로써 신의 이름을 등에 업고 통치자로서 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  

다윗은 유대 왕으로 추대됐다. 그는 또 유대 왕으로 출발했다. 유대는 부족동맹체와 상관없는 지역이었다. 이런 이유를 내세워 구약학자들은 다윗이 사울의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는 논리를 편다. 그가 이스라엘 정통의 왕권 계승자임을 자부한 것은, 사울의 아들 이스바알의 영지를 교묘하게 박탈하면서부터이다. 사무엘상 16정 5절 이하의 말씀은 다윗의 권력 장악의 과정을 단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꺼져라. 이 살인자야 꺼져라.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사울 일족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놈. 그 원수를 갚으시려고 야훼께서 이 나라를 내 손에서 빼앗아…”

법궤는 출애굽전통의 상징이다. 그것을 빼앗아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이스라엘 전통신앙을 빼앗아 하나님을 성전에 감금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루살렘 성전 외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현존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오 인류의 신을 예루살렘에 가두어 놓았다.

다윗 왕조는 다윗과 솔로몬을 잇는 시기를 1단계, 사마리아가 몰락한 이후 북이스라엘 분열의 조짐이 보인 시기를 2단계, 남유다왕국 시대를 3단계이다. 1단계는 통일왕국시대이나, 솔로몬시대에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2단계는 분열되었고, 3단계는 많은 시련 끝에 끝장이 난다. 이러한 분열은 다윗의 통치시대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반왕권적 부족동맹이었다. 한 하나님 신앙에 의해 결속되었다. 그 전통은 모세의 계약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에 반해 유대 왕권층은 정치군사의 힘에 의존하는 현실주의에 의해서 세워졌다. 예루살렘을 성역화하고, 하나님을 독점했다. 결국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이 만든 왕권과 도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분열의 원인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