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의 허구적인 설정들

▲ 김재성 목사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과 교회성장학교수로 30년간 가르치다가 2001년 은퇴한 이후, 와그너와 챨스 크래프트는 ‘영적싸움’ 혹은 ‘영적전쟁’을 핵심적으로 가르쳤다. 첫째는 영적 전쟁과 영적 싸움, 영적인 세계지도 작성, 특히 각 지역을 지배하는 지역 귀신들과 영들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싸움 등을 통해서 지배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없는데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영적인 권능을 발휘하여 악한 영의 세력과 싸움하면서 사역하는 것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다.

와그너 저서인 <권세들의 충돌>과 <영적도해>는 예수님과 사도들, 베드로와 바울사도 등이 어떻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했는가를 성경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매우 성경적인 책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그의 의도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만다. 처음에는 기도로 사탄을 이겨야한다는 전략을 제시하는 듯 보였지만, 그 후에 와그너는 지역 귀신들과 싸우는 전략과 구체적인 실제 계획들은 1990년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덧붙이고 나왔다. 사탄과 그의 귀신들은 이 세상에 문자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귀신들과의 영적인 전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제리아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깊은 체험을 가지게 된 챨스 크래프트(1932-)는 1982년부터 존 윔버를 만나면서 완전히 변질된 기독교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을 선 와그너를 추종하게 된다. 윔버의 능력종교를 지지하는 크래프트는 영적전쟁에 대한 왜곡된 해석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영적전쟁의 대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집단은 프리메이슨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도 않는 가설들에 대해서, 설령 프리메이슨 집단이 아무리 교묘하고 철저하게 세상권세를 쥐고 흔든다고 해도, 하나님의 권세와 통치와 능력을 대항할 자들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선교지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바를 절대적인 기독교진리의 본질에 놓고,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립적 싸움으로 관계설정을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족한 점은 정통개신교신학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이다.

전략적 차원의 영적전쟁

정통개혁주의신학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은 창조, 섭리, 작정을 통해서 절대주권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음을 배운다. 요한 계시록에서 거듭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사탄과 그 하속들 위에 부어졌으며, 사탄이 그 행동의 책임을 져야만 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사탄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통치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구속역사의 사건들 하나하나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참새 한 마리라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된다. 개신교정통신학은 성경전체의 전망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와그너와 챨스 크래프트가 갖고 있는 바, 사탄과 하나님의 영적대립이라는 기본구도설정은 맞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통해서 나타나고, 성령의 내주하심과 돌보심 가운데서 임재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통치와 절대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성취, 성령의 재창조, 보호하심과 임재하심을 밝히 알려주는데 있다.

또 다른 책에서 와그너는 로마가톨릭 성자들이 어두움의 영들에게 영광을 바쳤기에 자신이 아르헨티나에 선교사로 있는 동안에 그들의 성상들을 불태우도록 격려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의 협력자였던 신티 제이콥스에게 성령이 임하여서, 그녀가 아르헨티나의 한 도시에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이 아데미의 신상모형을 처리하던 것과 같다고 보았다(참고, 행19:23-27).

영적전쟁이라는 개념을 와그너가 해석한 바에 따라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가르치고 시행하고 있다. ‘영적싸움’ 혹은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는 별 거부반응 없이 모든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해하고 있는데, 문제는 과연 와그너와 그의 추종자들이 시행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도 적 예언운동을 하는 자들이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 포장해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와그너는 정통개신교교회가 확실하게 풀이하지 않은 내용들을 마음대로 확대해석했다. 그가 남미 선교현지에서 체험한 것과 빈야드 운동 존 윔버의 ‘능력종교’에서 배워온 것들을 적절히 혼합시켜서 만든 개념이다. 기독교는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승리를 확고히 믿고 있다. 이 세상의 영적권세를 잡은 세력과 성령의 사람들이 맞서서 이원론적인 싸움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빛과 어두움의 세력으로 나누어진 그런 구도자체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상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성도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경계심을 가지고 항상 깨어 있으면 복음을 거부하는 사탄에 대해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의 본부나 성채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성경적인 개념이지만, 매우 왜곡되어 있다. 와그너와 추종자들은 한 특정한 지역의 가장 높은 장소에 올라가서 그 곳을 다스리는 가장 높은 사탄들, 귀신들, ‘지역귀신들’을 묶으려는 권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한 도시나 한 국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서 사탄과 대결한다는 예언과 기도를 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선교적인 일로 높이 취급하게 만들었고,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과천에서는 관악산을 가고, 이북을 장악하는 사탄을 결박한다고 해서 중국을 거쳐서 백두산에 올라간다. 그런데 실상은 중국 쪽에서는 장백산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 지역을 지배하는 사탄의 권세가 부서지고 나면, 그 곳에 범람하는 주술, 성욕, 탐욕 등과 같은 강력한 죄 성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 신사도운동가들은 높은 곳을 직접 방문해서 기도하고 선언하는 행사를 매우 특별하게 강조한다. 이런 일들이 선교사역으로 둔갑해서, 해외에나 다른 지역을 방문해서 그 곳에 대해서 영적권세를 가지고 맞서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선교단체들이 모슬렘지역 등 일부 선교 지를 방문해서 ‘땅 밟기’라는 의식을 행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특수 사탄과의 영적전쟁’의 전략인 것이다. 많은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열정적으로 이 전략적 차원의 영적전쟁을 채택하였다. 특히 복음에 대해서 적대적인 모슬렘지역 등을 방문해서 위대한 위임명령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사역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예배 적 행사들을 시행하면서, 그곳에서 이름을 불러가면서 지역 귀신들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방법을 채택했던 것이다.

여왕의 궁전에서 작전

1999년 10월, 피터 와그너는 자신을 따르는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터키 에베소에서 이런 행사를 주도하였다. 그 지역에서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강한 영이라고 생각되는 “하늘의 여왕”과 같은 존재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왕의 궁전에서의 작전”이라고 하는 행사를 감행한 것이다. 와그너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 지역의 지배적인 영적 귀신이 무너지기를 명령하면서, 공격적으로 기도전쟁을 감행하였다. 이 여행은 그의 추종자들이 가장 모델로 삼고 따르는 대표적인 사역방법으로 굳어졌다. 이런 식의 영적 전쟁을 모델로 내세우면서 “전략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사람들에게서 사탄을 쫒아내는 정도가아니라 전체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차원“의 영적전쟁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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